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8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디르사에서 두 해 동안 다스렸다.

9그러나 엘라의 신하이며 병거부대의 절반을 지휘하는 시므리 장군이, 엘라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 때에 엘라는, 디르사에 있는 아르사 궁내대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는데,

10시므리가 들어가서, 엘라를 쳐죽였다. 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칠년에, 시므리가 엘라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11시므리는 왕위에 올라서, 바아사 가문에 딸린 사람은 모두 죽였는데, 바아사 가문의 남자는, 일가 친척이든지 친구이든지,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았다.

12시므리는, 주님께서 예후 예언자를 시키셔서 바아사에게 말씀하신 대로, 바아사 가문의 모든 사람을 멸망시켰다.

13이것은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가 지은 모든 죄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분노를 샀다.

14엘라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15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칠년에, 시므리는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그의 통치는 칠 일 만에 끝났다. 시므리가 엘라를 살해하고서 왕위를 차지할 그 무렵에,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에 속한 깁브돈을 치려고 포진하고 있었다.

16그러나 진을 치고 있던 군대는, 시므리가 반역하여 왕을 살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바로 그 진에서 그 날로 군사령관인 오므리 장군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17오므리는 온 이스라엘을 이끌고 깁브돈으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포위하였다.

18이 때에 시므리는, 그 성읍이 함락될 것을 알고는, 왕궁의 요새로 들어가서, 그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도 불에 타 죽었다.

19이것은 시므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행을 하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가서,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한 그 죄 때문에 생긴 일이다.

20시므리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꾀한 모반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21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가서 그를 왕으로 삼았고, 그 나머지는 오므리를 따랐다.

22그러나 오므리를 따르는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르는 백성보다 강하여서, 디브니는 살해되고, 오므리는 왕이 되었다.

23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일년에 오므리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열두 해 동안 다스렸는데, 여섯 해 동안은 디르사에서 다스렸다.

24그는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 산지를 사들였다. 그리고 그 산에다가 도성을 건설하였는데, 그 산의 소유자인 세멜의 이름을 따라서 그 도성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하였다.

25오므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는데, 그 일의 악한 정도는 그의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였다.

26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은 모든 길을 그대로 따랐다. 오므리는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고, 또 우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

27오므리가 한 나머지 행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28오므리는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서 사마리아에 묻히고, 그의 아들 아합이 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다.


반역이 반역을 낳고 그 반역이 또 반역을 낳는다. 

반역이 일상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반역을 꿈꾼다. 

왜냐하면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자신이 왕이 되어 맘대로 하고 싶어한다. 

인간 본성이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왕을 달라는 12지파들에게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그 왕으로 인해 백성들은 고통을 당할 수 있다. 

 

북이스라엘은 그야말로 개판이다. 

몇 년 사이에 반란이 몇 번씩 일어난다. 

그 와중에 외부와의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전쟁 중에 나가있던 오므리는 반역의 소식을 듣고서 자신이 반란을 일으킨다. 

시므리에게 왕권을 넘기느니 자기가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말씀을 읽다보니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다. 

하나님은 바아사와 엘라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시므리를 사용하셨다. 

시므리는 7일간 통치를 했는데, 바아사와 엘라의 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 시므리를 오므리를 통해 심판하셨다. 

그런데 오므리에 대한 평가는 그전 왕들보다 더 심각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움이다. 

선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지 않으시고 

악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도 그렇지 않은가!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도 그렇지 않는가!

과연 도덕적 우위를 논할 수 있는 나라들인가? 

그저 힘만 강한 나라들 아닌가.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은 어떤 나라, 어떤 개인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선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시고,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에서 중요한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데, 

통치의 방향인 에덴 비전의 회복, 그리고 통치의 방식인 부르심, 은혜, 약속, 심판이 바로 그것이다. 

그 가운데 부르심과 은혜, 약속은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통치 방식이라면, 

심판은 둘 다를 가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통치에 반기를 든 사람들과 조직들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든,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든 심판하신다. 그것이 성경의 역사다. 특히 구약은 이런 하나님의 통치를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북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했다. 

그들은 여로보암의 죄, 즉 자신보다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죄짓게 했기 때문이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현실적인 심판, 즉각적인 심판의 결정도 내리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특히 하나님의 분노가 종종 느껴진다. 

좋은 왕도 오래가지 못하고, 못된 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하나님은 회복을 위해 선택된 민족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습을 보며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하시다. 

그 고통과 슬픔이 예언자들을 통해 드러난다.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은 이유가 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슬퍼하며 재에 않아 울어버리는 일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최근의 하나님은 슬퍼하시는 분으로 느껴진다. 

그분은 수많은 딜레마 속에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시는 분이셨다. 

슬픔의 끝은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오랜 연민은 결국 우주적 결정을 이끈다. 

슬퍼하시는 하나님… 

슬픔의 하나님… 

숱한 인간사를 보면서 그분의 심장은 울고 있다.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들이 헤메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아… 하나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들일 수 있는가? 

 

오늘은 그분의 슬픔에 나도 젖는다. 


슬퍼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슬픔에 동참합니다. 

당신 백성을 향한 기대가 차츰 고통으로 바뀝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눈물로 가득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당신의 슬픔을 대변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깊은 연민에 잠깁니다. 

역사의 단편만 봐도 이렇게 슬픈데, 모든 역사를 아시는 당신의 눈에는 얼마나 슬플까요. 

주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 슬픔에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까지 몰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당신도 저의 한계를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 옆에 머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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