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05 수요일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다 

삼하 2:1-11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1 이런 일이 일어난 뒤에, 다윗이 주님께 "제가 유다에 있는 성읍으로 올라가도 됩니까?" 하고 여쭈었다. 주님께서 그에게 올라가라고 하셨다. 다윗이 다시 여쭈었다. "어느 성읍으로 올라가야 합니까?" 주님께서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알려 주셨다.

2 그리하여 다윗이 곳으로 올라갔고, 그의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함께 올라갔다.

3 다윗은 자기의 부하들과 그들의 가족을 데리고 함께 올라가서, 헤브론의 여러 성읍에서 살도록 하였다.

4 유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곳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유다 사람의 왕으로 삼았다.

사울을 장사지낸 사람들이 길르앗의 야베스 사람들이라는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지니,

 

5 다윗이 길르앗의 야베스 주민에게 사절을 보내어서, 그들에게 이와 같이 전하였다. "야베스 주민 여러분이 사울 왕의 장례를 치러서, 왕에게 의리를 지켰으니,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6 여러분이 그러한 일을 하였으니, 이제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친절과 성실로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도 여러분을 대접하겠습니다.

7 비록 여러분의 사울 임금님은 세상을 떠나셨으나, 유다 사람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삼았으니, 여러분은 이제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기를 바랍니다."

 

8 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사령관인데, 그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다.

9 거기에서 그는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다.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이 때에 마흔 살이었다. 그는 동안 다스렸다.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랐는데,

11 다윗이 유다 족속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다스린 기간은 일곱 여섯 달이다.

 

주석
1-7: 성경 저자도 독자도 다윗이 이제 '' 사실을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순전히 정치적 관점에서 , '유다 사람들' 결정은 예상할 없었다. 사울의 죽음과 길보아에서의 블레셋의 압도적인 승리로 인해 이스라엘에는 정치적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 틀림없으며, 지파 장로들은 가장 지혜로운 처신에 관하여 처음에 확신하지 못했을 것임이 틀림없다(IVP 성경주석).

길르앗 야베스(4): 사울의 전략적 지지 기반 하나였다. 사울이 이전에 사람들을 암몬 족속으로부터 구해주었다(삼상11, IVP 성경배경주석).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왕을 잃었습니다. 다시 유다로 귀환하려던 다윗은 오랜 기간 블레셋에 망명해 있었던 전적으로 인해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삼았지만 아직 이스라엘의 왕은 아니었습니다(1-4). 다윗은 사울의 시신을 장사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선대하며 반대 세력을 포용합니다(5-7). 이런 노력에도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웁니다(8-11).

 

다윗은 조심스럽게 유다로 귀환 했어야 했고, 사울 가문과의 대결도 피할 없게 되었습니다. 기름 부음 받고, 십오 만에 왕이 되었지만 자신의 혈족인 유다 지파만의 왕일뿐이었습니다. 일곱 여섯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한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다윗의 태도와 기다림, 인내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바를 묵상합시다.

 

 

——

결정의 순간

 

1. 유다 지파의 장로 

“유다 사람들이여, 

지금 정국이 심상치 않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우리의 왕인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었습니다. 비통함이 큽니다. 

동시에 우리는 두렴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언제 우리를 공격할 지 모릅니다. 

외부의 공격이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 내부적으로도 분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입니다. 

다음 왕위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역사가 좌지우지 됩니다. 

최근에 다윗이 헤브론에 왔습니다. 그의 식솔들과 부하들도 함께 왔습니다. 

그는 블레셋의 명장 골리앗을 맨몸으로 물리친 명장입니다. 

최근에 그가 지어 전파한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애가를 비추어 볼 때, 그는 역시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블레셋에 망명한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유다로 돌아왔습니다. 

같은 지파 사람으로서, 지금의 외부적 위기 앞에서 그를 우리의 지도자로 세우는 것을 제안합니다. 

여러 장로님들과 가문의 지도자들께서는 심사숙고하여 함께 이 일을 결정지읍시다. 

우리에게는 강력한 왕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유다 지파의 A 장로의 제안을 대부분이 동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헤브론의 다윗을 찾아간 것이다. 

군사력을 갖춘 다윗, 헤브론의 여러 성지에 자신의 가족들과 부하들이 흩어져 있다. 

부하들의 다윗에 대한 존경심은 이루 말할 없다. 

그동안 다윗이 보여준 모습에 그들은 감탄했다. 여론이 좋았다.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은 빠르게 정세 판단을 내렸다. 

같은 지파의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기로 말이다. 

하나님께 물으면서 기도하면서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해주셨다.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던 것이다. 

 

2. 성경 숨겨진 인물들

어떤 이야기든 주인공이 있다. 

성경의 이야기도 주인공 중심의 이야기 전개다. 

그걸 뭐라할 수도 없다. 지면은 한계가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면을 할애하기 시작하면 기록할 수도 없거니와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충분히 이해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이 주인공밖에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순진하다. 

때로 주인공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 반면교사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윗의 이야기에는 수많은 주변인물이 존재한다.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당시 유다 지파의 최고참 A 장로, 그는 정세 판단이 빨랐다. 그리고 빠른 판단을 통해 유다 지파의 길을 알려주었다. 결국 선택은 옳은 선택이 되었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 속에서 다윗의 왕권은 예수님의 왕권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주 작은 선택을 당시 유다 지파 지도자들은 성경 전체의 중요한 결정 요소로 남는다. 전체로 보면 작은 결정 같지만, 그들에게는 목숨을 모험이었다. 어쨌든 이제까지 사울 집안이 다스려 왔다.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윗에게 왕위의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반역, 모반이다.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어려운 것을 유다 지파 지도자들이 해냈다.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자이크가 되었다. 작은 벽돌이 것이다. 

 

성경에 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숨겨진 사람들의 믿음의 행보를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3. 지도자들의 결정 

국가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의 결정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 알고 있다. 

그런데, 때로 작은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들, 혹은 가정을 이끄는 부모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은 결정 하나 하나가 쌓여서 공동체의 역사가 된다. 결정의 벽돌을 오늘도 쌓는다. 부담스럽지만, 그것이 지도자들의 몫이다. 

 

한계를 가진 인간들이 무거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야고보가 그렇게 강조하듯 말이다.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빠른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에 꽂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4. 성향 vs 성찰

크게 가지 메시지가 등장한다. 

즐겁게 하세요스스로를 성찰하세요 그것이다. 

즐겁게 하라는 말은 매우 의미가 있다. 자신의 성향대로, 자신의 기호대로 하라는 말이다. 억지로 하지 말라는 말이다. 웃으면서 하라는 말이다. 노력하는 이길 없다. 하지만 즐기는 자가 최후 승자다. 독일인 심리치료사인 롤프 메르클레가 이렇게 말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없다.” 그러나 한편 즐기라라는 말에는 자신의 성향을 그대로 두라 혹은 성향과 기호를 더욱 강화하라는 말로 이어진다. 사람은 관성의 동물이라 제어장치가 없으면 계속 자신의 성향대로 살아간다. 그게 자신의 길을 오래 걸어가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은사대로 사역하라는 말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즐겁게 하라는 원칙만 따를 , 사람은 자신에게 갇힌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에 집중하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모르는 사람보다야 아는 사람이 낫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따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성을 쌓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자기 부인의 삶을 선택하지 않을 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자기 부인의 길이다. 은사에 맞는 사역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부인의 삶을 계속 연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벽돌을 함께 쌓을 없다. 자신의 성은 쌓을 있지만, 모두의 성을 쌓는 일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역은 자신의 성을 쌓는 과정이 아니다. 예수님의 성을 함께 쌓는 과정이다. 

근대적 주체는 자신의 성을 높이 쌓기를 요청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주체는 예수님의 성을 쌓아간다. 

근대적 주체는 자신의 성을 쌓아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후기 근대적 주체는 자신의 집을 짓고 파티만 연다. 

기독교적 주체는 예수님의 성을 위해 하나의 벽돌이 된다. 

 

사역자들은 자신을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된다. 

자신의 , 자신의 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을 함께 쌓아가야 한다. 

 

——

 

주님, 모두가 다윗 처럼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자신이 속한 작은 공동체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살게 것입니다. 

저도 지금 있는 공동체의 리더십으로 있습니다. 

더욱 겸손하게 나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성을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자신을 부인하며 저의 십자가를 지고 길을 걸어가게 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성을 쌓는 일에 몰두하지 않게 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있는 하나님의 성을 만드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게 주세요. 

기호, 성찰 

가지 필요합니다. 

주님의 인도를 구합니다. 

 

어린이 날입니다. 

어린이들은 포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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