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01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2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4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6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참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석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1절) 인사의 대상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다. 이 말은 교회가 단순히 종교적인 성향이 같은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IVP 성경주석).

 

묵상도움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됐습니다(1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도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3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난을 겪지만, 이를 견딜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5-6절).

 

바울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6-7절).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고난을 견디는 공동체와 동역자를 통해 하나님께 위로를 얻습니다. 고난으로 연약해질 때, 서로에게 거는 든든한 희망으로 견디어 냅니다. 나는 어떤 고난에 동참하고 있나요? 어떤 위로를 주고받고 있나요?

 

 

[오늘의 묵상]

새달, 새학기를 맞아 묵상 본문이 바뀌었다. 

출애굽기에서 고린도후서로. 

출애굽기에서 홍해를 건너는 것으로 2월 묵상이 마무리되었다. 

좋은 점은 그 뒷 이야기가 기대된다는 점이요, 아쉬운 점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찬양의 글을 묵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민족 모든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했을지 천천히 묵상해보고 싶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이스라엘을 따라 나왔던 타민족 사람들도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면서 어떤 노래로 찬양했을지 감히 상상이 잘 안간다. 

 

오늘 본문은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확신하는 장면이다. 

이야기에서 논리적인 편지글로 옮겨지는 것이 순간 적응이 안된다. 

이야기는 장면의 흐름이 연상되는데, 편지글은 논리적인 구성이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요사이 이런 단정하듯 말하는 주장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바울은 거의 선포하듯 주장하는데, 그 예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고난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사건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사건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그 사건 속에서 울고 웃고, 어떤 감동과 메시지를 받는 것이 익숙한 우리들에게 단정적 문장 하나로 그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과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러니 편지글을 읽을 때는 바울이 어떤 상황에서 이 편지를 쓰는지, 그 배경을 미리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고린도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고린도 도시 상황은 어떠한지, 왜 이 편지를 쓰게 되었는지 등등 미리 알고 있어야 묵상의 깊이가 더해진다. 

앞으로의 묵상을 위해 고린도교회 상황을 더 알아야겠다. 

 

당장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래도 오늘 본문에 집중해 본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특히 바울같은 선교사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선교지에 방문할 때마다 죽을 위기를 넘긴다. 

옥에 갇혀 비명횡사할 뻔했다. 

유대인들의 모함과 폭력에 죽을 뻔한 적도 몇번이나 된다. 

각 사건 하나 하나 깊숙히 살펴봐야 한다. 

바울이 어떻게 고난을 당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는지도 말이다. 

자신이 경험했기에 제자들에게 그리고 성도들에게 담대하게 선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고통받는 자들 편에 서서 위로를 주신다.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돌봐주신다. 때로는 물질적으로, 물리적으로 도움을 주신다. 

그분의 도움과 보호하심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한다. 

감정이 풍부한 나에게는 그분이 정서를 건드시는 순간, 위로를 경험한다. 

자연을 보고, 그분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분이 행하셨던 사랑의 행위들을 기억하고, 기도 속에 경험했던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돈을 많이 주시는 것,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경험하는 것, 그것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것보다 나에겐 그분의 임재와 그분이 주시는 감동이 더욱 중요하다.

 

하나님의 위로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 위로가 없이는 삶을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롭다. 

죽음은 항상 가까이 있고, 악은 그 괴력을 더욱 뽐낸다. 

전쟁과 재해는 언제나 생지옥을 만들고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천지를 진동시킨다. 

그러니 이런 삶에서 하나님의 위로가 없다면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선교 현장은 더할 것이다. 

러시아의 강선교사, 캄보디아의 양선교사… 어디에 있든 그들은 고난 속에 있다. 

익숙한 곳을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안고 세계로 간다. 

언어도 문화도 새로움이 주는 신선함 이면에 고통이 뒤따른다. 

그들이 있는 곳에 성령님의 역사가 더욱 강하게 일어난다. 

하나님의 위로가 성령님을 통해 그들 가운데 임한다. 

 

오늘 영종도의 1박 여행은 하나님의 위로다. 

갑작스런 결정이었지만,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꺄르르 웃는 아들 녀석이 그저 사랑스럽다. 

집에 있었으면 TV나 볼 것을, 이렇게 나오니 보드게임도 온 가족이 같이 한다. 

일상 속에 들어오는 위로의 빛이다. 

3월의 시작을 위로로 연다. 

 

 

 

 

[오늘의 기도]

위로의 주님,

감사합니다. 

갑작스런 1박 여행도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이 순간들 속에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소서.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기억합니다.

익숙함을 던지고 당신의 부르심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매일 매일 당신의 위로가 넘치게 하소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풍성하게 하시고,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사역을 이뤄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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