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11 화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도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2 때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는 군지휘관이 사람 있었는데,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었다. 그들은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로서, 베냐민 사람이다. (브에롯 사람도 베냐민 족속으로 여김을 받았는데,

3 일찍이 브에롯 주민이 깃다임으로 도망가서, 오늘날까지 거기에 머물러 살고 있기 때문이다.)

4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는 다리를 저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이 이스르엘에 전해졌을 때에, 그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유모가 그를 업고 도망할 때에, 서둘러 도망하다가, 그가 떨어져서 발을 절게 되었다. 그의 이름이 므비보셋이다.

 

5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이 있는 왕궁으로 갔다. 그들은 한창 더운 대낮에 곳에 도착하였는데, 때마침 이스보셋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6 그들은 밀을 가지러 사람처럼 꾸미고, 대궐 안으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찔러서 죽였다. 그런 다음에 레갑과 그의 동생 바아나는 도망하였는데,

7 그들이 대궐로 들어갔을 때에, 왕은 침실에서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잘라 수가 있었다. 그들은 그의 머리를 가지고 나와, 밤새도록 아라바 길을 걸어서,

8 헤브론으로 갔다. 거기에서 그들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다윗에게로 들고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의 생명을 노리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를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주님께서 높으신 임금님을 도우시려고, 오늘에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벌을 내려서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9 그러나 다윗은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동생 바아나에게 이와 같이 대답하였다. "온갖 죽을 고비에서 나의 생명을 건져 주신 확실히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10 전에,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나에게 전하여 주고, 자기는 좋은 소식을 전한 것으로 여긴 자가 있었다. 나는 그를 붙잡아서, 시글락에서 죽였다. 이것이 내가 그에게 보상이었다.

11 하물며, 흉악한 자들이, 자기 침상에서 잠자는 어진 사람을 죽였으니, 내가 어찌 너희의 살인죄를 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이제 너희를 땅에서 없애 버리겠다."

12 다윗이 젊은이들에게 명령하니, 젊은이들이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손과 발을 모조리 잘라 다음에, 그들의 주검을 헤브론의 연못가에 달아 매었다. 그러나 이스보셋의 머리는 가져다가,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무덤에 묻었다.

 

주석
9-12: '레갑' '바아나' 다윗이 라이벌 왕을 죽인 대해 그들에게 보상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시 , 그가 살해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만 했다. 그는 살해자들을 처형하고 이스보셋을 좋게 말함으로써 소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다(IVP 성경주석).

 

의지하고 있던 대상이 사라졌습니다. 이스보셋을 비롯한 백성이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1). 바아나와 레갑은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살필 여유도 없이, 그들은 단순한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깁니다(2-7).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다윗을 찾아갔지만, 결국 죽음의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8-12).

 

두려움과 불안은 사람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제대로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를 가만히 있을 없도록 만듭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찾아오는 두려움과 불안, 취해야 마땅한 태도, 그리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바에 대해 묵상합시다.

 

——

 

자기 꾀에 넘어지다. 

바아나와 레갑은 군대 장군이었다. 아브넬이 총사령관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총사령관이 자기 군대를 배신하고 적군과 내통하다가 살해당했다. 

이제는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라인을 타야 한다. 대세가 어떻게 기울었는지 확인했다. 

방법은 다윗에게 이스보셋을 갖다 바치는 뿐이었다. 

원수의 수장을 갖다 바치면 다윗이 기쁘게 자신들을 맞이하여 벼슬을 알았다. 

사울 때부터 다윗을 쫓아 다녔다. 바아나와 레갑도 비슷한 임무를 여러 수행했을 것이다. 

다윗과 사울의 적대관계를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목을 가지고 가면 다윗이 그들을 용서하고 중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전장터에서 죽는 것보다 이렇게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봤다. 

 

그러나 이는 다윗에 대한 사전조사가 미흡했으며, 다윗을 오해했고, 다윗이 처한 정치적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내린 오판이었다. 

다윗은 사울, 요나단, 아브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조가를 부를 정도로 진심으로 슬퍼했었다. 

비록 정치적 선택이었다하더라도 다윗의 마음에는 진심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으며 사실은 점점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다윗은 사울 집안을 존중하고 있으며 민족의 화해와 용서 그리고 통일을 바라고 있는 사람임이 널리 널리 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바아나와 레갑이 과연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 그들도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석이 달랐던 것이다. 다윗의 진심에 대해 오해했다. 

다윗의 애가는 오로지 정치적인 제스처이며, 마음으로는 사울 왕가의 모든 자손들이 죽길 원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던 이스보셋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다. 

다윗은 나중에 므비보셋을 자신의 식탁에 데리고 와서 함께 밥을 먹을 정도로 진심으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원했다. 하지만 바아나와 레갑은 진심을 믿지 못했다. 

 

결국 자기 꾀에 넘어졌다. 

거사를 치르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가져갔을 때만해도 의기양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알게 되었다. 

다윗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들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그들은 다윗의 진짜 의도와 진심을 모르기도 했고, 왜곡했다. 이렇게 사울 왕가는 자중지란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방역수칙을 열심히 지켜온 우리는 수적 감소를 격하게 경험하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생존 있을지도 모를 지경이다. 코로나 전에 비해 절반이 아니라 1/3 수준으로 급감했다. 아니 그보다 심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른 C단체는 타격이 없고, 오히려 인원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마음이 심란하다. 

 

한국교회를 비판해왔다. 정부의 방역 지침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했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하고 가르쳤다. 그런데 언제까지 오프라인 모임을 최소화할 있을까? 선제적으로 수칙을 정하고 국가의 정책을 따라 왔다고 본다. 그러나 신입생을 붙잡지 못하고, 모임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서 결국 내년이나 내후년에 전국 멤버십이 500 이하로 떨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역사적 해석을 내리겠는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어느새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온다. 

그동안의 모든 생각과 선택과 결정이 과연 옳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두려움과 무거운 책임감이 든다고 해서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된다. 더욱 면밀히 살펴야 한다. 우리가 이런 결정들을 했는지, 그리고 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 보자. 이웃을 위해 우리를 희생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도를 벗어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이순간 나의 문제는 생각이 너무 단편적이라는 것이다. 

깊은 생각과 명석한 판단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심과 예수님의 본심을 쉽게 오해할 있는 존재들이다. 

그분의 뜻과 생각을 없다고 믿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그분의 뜻을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본심을 이해하고 있는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게 달라고 요청드린다. 

 

함부로 결정하고 싶지 않다. 

주님의 인도를 구한다.  

꾀에 내가 넘어가지 말기를 기도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

예수님, 

저는 갑작스럽게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공동체가 결정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이 설혹 우리 공동체를 사지로 몰아 넣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노예가 되지 않게 주세요. 

오직 주님의 주시는 평안 속에서 주닝의 인도를 받게 주세요. 

주께서 우리가 희생하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야 것입니다. 

어떤 단체, 공동체건 하나님 나라에 잠시나마 기여하면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공동체가 되게 해주세요. 

 

저의 두려움을 제하시고, 오직 주님의 밝은 빛을 비춰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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