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04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9 그 왕이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다.

10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신중히 대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수가 더욱 불어날 것이고, 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그들이 우리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우리를 치고, 이 땅에서 떠나갈 것이다."

11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부리는 공사 감독관을 두어서, 강제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바로가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끌려 나갔다.

12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그 수가 더욱 불어나고, 자손이 번성하였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몹시 싫어하였고,

13 그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14 이집트 사람들이,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이나 밭일과 같은 온갖 고된 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히므로, 그들의 일은 매우 힘들었다.

 

주석

비돔(11절). 이집트의 피(르) 아툼[Pi(r)-Atum], 곧 ‘아툼의 부동산’으로 밝혀졌다. 이 곳은 현재 카이로에서 북동쪽으로 약 97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본문에는 국고성을 건축하는 일이라고 나와 있지만, 이 곳이 곡물 저장소일 뿐이라는 말은 아니다. 국고성은 지역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중심지였으며 수도였을 수도 있다(IVP 배경주석). 

 

요셉을 알지 못하는 이집트의 새 왕은, 수가 많아진 이스라엘을 잠재적인 중대한 위협으로 보았습니다(8-10절).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제노동으로 억압합니다(11절). 그럼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더욱 번성합니다(12절).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이집트 사람들의 적대감과 괴롭힘이 더욱 심해집니다(12-14절).

 

이스라엘의 번성을 억제하는 이집트의 폭압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번성하고 있습니다(12절).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냉혹한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해받지 않습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위협하고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불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성취되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게 만들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최종적 성취와 과정적 성취로 나룰 수 있겠다. 

구약 백성들에게 최종적 성취는 예수님의 성육신이며, 

신약 백성들에게 최종적 성취는 예수님의 재림이다. 

그 과정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된다. 

 

새 바로 왕은 지혜로운 왕이다. 

미래의 위협에 대해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대응한다. 

잠재적 위협의 최악을 상정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계획을 세운다. 

번성하여 인구가 많고, 나름 경제적 부를 소유했으며,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 종족 전체를 억압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새 왕의 리더십과 그 주위 신하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바로 왕의 리더십과 정치력을 높게 산다. 

 

그러나 왕이 놓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언약(약속)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바로의 머리에는 하나님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신의 아들이자 신 그 자체로 떠받들어 졌기 때문이다. 

그의 리더십와 정치력은 착각과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권력이 자신을 신처럼 만들어 놨으니 그 자신도 어찌보면 피해자이다. 

왕의 리더십과 정치력은 포화된 극강 자의식, 즉 신화화된 자기애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독특한 자의식으로 둘러쌓여 있다. 

언제나 자기는 옳고 상대진영의 사람들은 틀리다. 

자신의 세력과 자신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과도한 특혜를 받는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을 개나 돼지 급으로 여긴다. 

자신들은 통치자며 시민들은 피통치자이다. 

자신의 지지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한다. 항상 그런 사람들 사이에 살면, 어느새 자신은 하나님처럼 되고 만다. 

아담과 하와가 저질렀던 죄악의 시작은 사단의 부추김이며 칭찬이며 유혹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국 핍박을 받는다. 

번성과 핍박이 동시에 찾아온다. 

자손의 수가 줄지 않는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문화 명령에 충실한 종족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기이한 번성에 기득권들은 위협을 느끼고 박해하기 시작한다. 

생육과 번성은 문화에 기반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하며 그 일의 소중함을 아는 문화 속에서는 출산이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인다. 

그 반대 문화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서구권과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문화다. 

이스라엘은 출산의 문화가 정착되고 장려되었다. 

아마 다른 기득권들은 그 정도의 출산 문화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문화를 갖게 된 것도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 그리고 그분의 축복 때문이다. 

기득권 층의 시기와 두려움이 극에 달하자, 결국 히브리 민족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기에 이른다. 

강제 노역을 통해 삶의 의지를 꺾는다. 

부부관계가 원활하지 않도록 막는다. 

출산 문화가 작동하지 않도록 제한하려고 한다. 

그렇게 히브리 민족은 핍박을 받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을 지키신다. 

핍박이 찾아오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 

그 강도가 점점 세진다. 

죽어나가는 젊은이들이 상당하다. 

고대의 건축 노동의 노동자들의 피의 산물이다. 

현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카타르의 월드컵 경기장은 동남아시아의 노동자의 공동묘지이기도하다. 

히브리 사람들이 일하다 죽는다. 고된 노역으로 고통당한다. 쉬지 않고 일한다. 일이 점점 많아진다. 

사람은 쉬지 않으면 죽는다. 생명은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치료받을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 쉼과 회복이 충분하지 않으면 생명은 단축된다. 

평균 수명이 줄고, 젊은이들이 공사판에서 죽어나가면, 자연히 인구는 줄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을 지키셨다. 당신의 언약과 약속을 지키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한 공동체와 사람들을 지키신다. 

교회를 지키시고, 선교단체를 지키신다. 

선택한 가정들을 돌보신다. 

핍박과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우리가 희망과 소망을 버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분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신다. 

핍박으로부터의 탈출계획을 세우신다. 

그 위대한 출애굽의 서막이 시작된다. 

교회도 그렇고 선교단체고 그렇고 하나님의 희망의 이야기가 계속 흘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용기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한 공동체와 사람들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2023년 01월 03일 화요일

번성한 이스라엘

출 1:1-7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1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다.

5 이미 이집트에 내려가 있는 요셉까지 합하여, 야곱의 혈통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일흔 명이다.

6 세월이 지나서,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들은 다 죽었다.

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그 수가 불어나고 세력도 커졌으며, 마침내 그 땅에 가득 퍼졌다.

 

NIV

but the Israelites were exceedingly fruitful; they multiplied greatly, increased in numbers and became so numerous that the land was filled with them(7절).

 

이집트에 정착한 야곱의 식구들은 작은 수에 불과했습니다(1-5절). 세월이 많이 흘러 초기 구성원들은 모두 죽었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번성하여 그 땅에 가득 퍼졌습니다(6-7절).

 

야곱의 가족 명단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연결하는 다리와 같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창세기의 인물들은 모두 죽었지만(6절), 이스라엘은 크게 번성합니다(7절).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 역시 기대하게 됩니다. 과거에 나와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면,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묵상 정리

본문을 통해 깨닫고 느끼게 된 말씀으로 한문장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본문의 분량이 적으니 여러 번 읽기에 좋다. 

성경 전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은 분량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성경의 흐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분절된 분량이 주는 모호함과 난감함도 있을 것이다. 

전후 문맥을 살피면서 본문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할 이유다. 

 

야곱의 가족의 대 이동과 이주는 이집트의 역사에서는 크게 주목 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70명의 가족이 대 왕국 이집트 입장에서는 작은 무리였을 것이다. 

그 정도의 인원은 언제나 들고 났을 것. 

물론 요셉이 총리였기에 그것도 인정받은 영웅 같은 총리 였기에 그의 가족들의 이집트 방문은 왕국 전체에 환영을 받았다. 

 

새로운 땅, 왕국의 축복을 받은 땅, 비옥하고 번성하던 땅… 이집트.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땅을 벗어나서 비교적 척박하던 가나안 고산 지대로 이주했었다.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 야곱은 대왕국 이집트로 이주하고 정착한다. 

그리고 400여년이 흐른다. 

새롭게 이주한 그 땅에서 이스라엘은 번성한다. 수 많은 후손들이 이집트 땅 전역에 돌아다닌다. 

고센 땅에 주로 정착해서 살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왕국 전체에 히브리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잘 나가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들은 이집트 본토 사람들의 노예가 되고 만다. 

 

오늘 본문의 번성은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다기보다 자손의 수가 많고, 경제적인 부가 있었으며, 그래서 세력이 불어났음에 주목하는 듯하다. 물론 일부 히브리인들은 정계에 진출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오히려 바로 왕에게 찍히는 결과를 낫지 않았을까 싶다. 핍박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히브리민족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기를 바랬을까? 아님 이집트에서 잘 정착해서 번성하고 경제적인 부를 획득하고 정치적인 권력도 얻어서 이집트 땅의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잘 하기를 바라셨을까? 성경 전체의 흐름을 놓고 보자면, 하나님은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이집트에서의 번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오늘 본문의 번성은 자칫 우리를 속게 만든다. 저 번성은 미끼다.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번성한 것은 맞지만, 누군가에게 번성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게 만드는 유혹이요, 함정이 된다. 저 미끼를 계속 물고 있으면 약속의 땅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핍박은 축복이다. 다시 본래 약속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핍박의 순기능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번성하게 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사람들은 번성하기 마련이다. 우주의 주인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사람들을 살리고 새롭게 하는 힘이 있다. 창의적이고 유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사랑받는 존재들은 수가 늘어난다. 세력이 분다. 땅에 퍼져나가고 유력하게 된다. 그러나 그게 함정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번성이 자칫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게 만든다면, 우리는 번성의 추구가 아니라 그분과의 사랑에 대한 추구로 돌아가야 한다. 

 

번성과 핍박…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숙명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번성한다. 그러나 또한 핍박받는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된다. 이웃을 더 아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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