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5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악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반역의 충동 있어,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습니다.

2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 양양하고, 잘못을 찾아내 버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3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사기와 속임수뿐이니, 슬기를 짜내어서 좋은 일을 하기는 이미 틀렸습니다.

4잠자리에 들어서도 속일 궁리나 하고, 범죄의 길을 고집하며, 한사코 악을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5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습니다.

6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 주님, 주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

7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어찌 그리 값집니까? 사람들이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 숨습니다.

8주님의 집에 있는 기름진 것으로 그들이 배불리 먹고, 주님이 그들에게 주님의 시내에서 단물을 마시게 합니다.

9생명의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

10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의를 변함없이 베풀어 주십시오.

11오만한 자들이 발로 나를 짓밟지 못하게 하시고, 악한 자들이 손으로 나를 휘두르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12 때에 악을 일삼는 자들은 넘어지고,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시인은 악인의 모습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교만한 , 거짓된 ,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악한 계획을 꾸미는 것으로 묘사합니다(1-4).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넓은 하늘을 채울 만큼 가득하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바다처럼 깊습니다(5-6).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주의 사랑과 의로운 돌보심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7-9).

 

시인은 주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며, 악한 자들로부터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10-11). 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며 악한 일을 일삼다 심판을 받지만(12),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길 기도합시다.

 

——

1. 반역의 충동

시인은 악인들의 마음에 있는 충동에 대해 다룬다. 

충동은 본능적이다. 갑자기 튀어 나온다. 무조건적 반응이다. 

이면도로를 오손도손 걷다가도 뒤에서 갑자기 경적을 울려대면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온다. 

악인의 마음에 있는 충동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반역의 충동이다. 

누구에 대한 반역인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길 원한다. 

 

시인은 제대로 짚었다.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반역의 충동을 계속 안고 산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분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학습하지 않았거나, 믿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듣지 않는 , 들어도 거부하는 , 다른 신들의 이야기에 현혹된 자는 하나님을 업신 여기기 일쑤다. 

그렇게 반역의 충동을 방치하게 되면 악인이 되어간다. 

 

그들은 하나님에게만 반역의 충동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이웃에 대한 악행으로 이어진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속일 생각을 한다. 범죄의 길을 한사코 고집한다. 악을 고집한다. 

머리를 쓰는데 슬기와 지혜는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골탕먹이고 죽이는 일이다. 

 

2. 하나님의 신실하심

시인은 악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에 대해서 노래하기 시작한다(5 이하). 

악인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자연스런 흐름은 의인에 대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 집중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신실하심을 노래한다. 

유독 눈의 띄는 표현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대한 고백이다. 

 

6_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 주님, 주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

 

사람과 짐슴을 똑같이 돌보신다는 그의 고백에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짐승을 돌보신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린다. 

나도 점점 동물에 대한 사랑이 커져가고 있다. 

개는 훌륭하다, 고앙이를 부탁해, 동물 농장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물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은 자연 만물 전체를 사랑하신다. 

창조때부터 지금까지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시인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 

 

 3. 시인의 간구 

시인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주목했는가? 

시의 마지막 10-12절에 이유가 나온다. 

약간 유치하기도 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에게 간청을 드린다. 

 

10_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의를 변함없이 베풀어 주십시오.
11_오만한 자들이 발로 나를 짓밟지 못하게 하시고, 악한 자들이 손으로 나를 휘두르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12_ 때에 악을 일삼는 자들은 넘어지고,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시인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오만한 자들은 넘어지길 요청한다. 

시인의 진심이 드러난다.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다. 

하나님에 대한 묵상은 자신에 대한 보호와 자신을 해하려는 자들에 대한 저주로 이어진다. 

 

이게 시다. 기도다. 지극히 개인적인 요구요, 간청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현실의 악에 맞설 힘이 없다. 

하루 종일 악한 생각과 계획을 짜는 사람과 어찌 맞설 있단 말인가? 

 

드라마 빈센조의 핵심 메시지는거악을 소악이 혼쭐낸다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쓰레기이다.

거대한 악의 카르텔에 맞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악에 의존한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이 악한 생각을 집요하게 이어나간다. 

규모와 깊이의 구조악에 맞서 사람들은 악을 이길 새로운 연대를 형성하지만, 그것이 선은 아니다. 

 

, 과연 일상의 신실한 사람들이 거대악에 맞설 있는가? 

매일 모든 시간에 악을 계획하고 치밀하게 디테일하게 공격하는 악인들에게 평범한 범부들이 어떻게 대적할 있는가? 

그렇다. 이제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의지할 이다. 

신실하신 , 모든 자연을 사랑하시는 , 악인을 미워하시는 , 생명의 샘이 되시고, 쉼터가 되시고, 빛을 비추시는 , 그분께 집중할 밖에 없다. 

울분을 토로할 분은 밖에 없다. 

 

그렇다고 거대악에 맞서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다. 맞설 있다. 그러나 혼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의 도움을 힘입어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있는 일이다. 

 

미얀마 군부의 유혈 진압을 규탄한다. 

미얀마 청년들의 울부짖음에 나의 외침을 덧붙인다. 

 

주님, 선량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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