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06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 레위 가문의 한 남자가 레위 가문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2 그 여자가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 남이 모르게 석 달 동안이나 길렀다.

3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를 구하여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 두었다.

4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 보고 있었다.

5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대 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 오게 하였다.

6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7 그 때에 그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바로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

8 바로의 딸이 대답하였다. "그래, 어서 데려오너라."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 왔다.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나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삯을 주겠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젖을 먹였다.

10 그 아이가 다 자란 다음에, 그 여인이 그 아이를 바로의 딸에게 데려다 주니, 공주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공주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다.

 

NIV

and she became pregnant and gave birth to a son. When she saw that he was a fine child, she hid him for three months(2절).

 

레위 가문에서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엄마는 ‘하도 잘 생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남몰래 키웁니다(2절).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여자는 아이를 갈대 상자에 넣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습니다(3절). 마침 강가에 목욕을 하러 온 바로의 딸이, 아이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깁니다(5-6절). 이것을 지켜보던 아이의 누나는 바로의 딸에게 적절한 제안을 합니다(7-8절). 이렇게 모세는 건져집니다(10절).

 

나일 강은 히브리 남자 아이에게는 죽음의 장소요, 그의 가족들에게는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 한 생명이 건지십니다. ‘하도 잘 생겨서(2절)’의 원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며 ‘좋았더라’라고 하신 단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눈길로 바라봤던 어머니(2절), 갈대 상자에 담긴 동생의 안전을 걱정하며 지켜보던 누나(4절), 히브리 남자 말살 정책을 알고서도 히브리 아이를 불쌍히 여긴 바로의 딸에 의해(6절) 모세는 건짐을 받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작은 행동들을 모아, 구원의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의 묵상]

바로의 딸은 연민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바로의 정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지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갈대에 담겨 떠 내려오는 아이가 히브리 남자 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아이를 길렀다. 

솔직히 몇 명이나 이렇게 건졌는지 잘 모르겠다. 

꽤나 많은 아이가 이 공주에 의해 살았을 것 같다. 

 

하나님은 이 공주를 사용하셔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 

모세의 아빠, 엄마, 누나, 그리고 바로의 공주 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퍼즐들로 기여한다. 

모세를 기르는 것은 그들에게 큰 일이자 작은 일이다. 

큰 일은 왕국의 정책을 거스르기 때문이요. 

작은 일은 모세가 세울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크기에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연 알았을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실지 말이다.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저 아기를 살리고 키워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고통 속에서도 아기를 키웠다. 

3개월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언제 이집트 관리들이 들이 닥칠지 모른다. 

아기 울음 소리를 막기 위해 갖는 방법을 다 동원 했을 것이다. 

죽음의 위협이 항상 그들을 짓눌렀다. 

3개월이 지나자 어쩔 수 없이 눈물로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다. 

아들을 떠나보내던 엄마와 아빠의 눈가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태어나면서부터 3개월이 되어 아기를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떠나 보내는 이 순간까지, 

고통 속에서 키웠다. 

 

모세의 부모는 아기를 버렸고,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났다. 

부모 입장에서는 모두 고통스런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이 헛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손 안에 모세와 예수님은 새로운 나라를 일으킨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새로운 영적 생명을 키우는 목회자 혹은 사역자들은 모두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간다. 

사람을 키우고 양육하는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온 마을이 달라 붙어야 되는 일이다. 

개인화된 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 혹은 새로운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이 그래서 어렵다. 

부모나 목회자가 자기 혼자 하려고 하는 순간, 고통이 배가 된다. 

많은 사람이 도와야 한다. 

주양육자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옆에서 돕는 사람들이 필수적이다. 

함께 양육하는 것이다. 

그래야 생명도 살고 양육자도 산다. 

 

기독 공동체는 서로 양육하는 공간이다. 

서로 배우고 서로 자라가는 공간이다. 

한 두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영적 선생님이 되어 서로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준다. 

그런 상호 협력 배움이 사라지면 생명이 잘 자라나지 않는다. 

가르치려던 그 한 두 사역자는 번 아웃에 이르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모세의 아빠, 엄마, 누나, 그리고 바로의 딸이 필요하다. 

긍휼과 연민과 애정을 쏟아 붓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오늘 

나에겐 그런 사람이 있는가? 

아니 나는 그런 사람인가? 

 

[오늘의 기도]

생명의 주관자 되신 주님, 

저를 태어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생명 뿐 아니라 영적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그 또한 감사드립니다.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도움을 받도록 인도해주세요. 

저에게 사랑, 연민, 애정, 긍휼의 마음을 주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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