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06 목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2 어느 , 넬의 아들 아브넬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마하나임을 떠나 기브온으로 갔다.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 다윗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서서, 장군이 기브온 연못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붙게 되었다. 편은 연못의 이쪽에, 편은 연못의 저쪽에 진을 쳤다.

14 때에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젊은이들을 내세워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합시다." 요압도 그렇게 하자고 찬성하였다.

15 젊은이들이 일어나서, 일정한 수대로 나아갔는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쪽에서는 베냐민 사람 열두 명이 나왔고,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서도 열두 명이 나왔다.

16 그들은 서로 상대편 사람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똑같이 상대편 사람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서, 모두 함께 쓰러져 죽었다. 그래서 기브온에 있는 곳을 헬갓핫수림, '칼의 벌판'이라고 부른다.

 

17 날에 싸움은 가장 치열하게 번져 나갔고, 결국 아브넬이 거느린 이스라엘 군대가 다윗의 군대에게 졌다.

18 마침 곳에는,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 있었는데, 아사헬은 들에 사는 노루처럼 달음박질을 하였다.

19 아사헬이 아브넬을 뒤쫓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빗나가지 아니하고, 아브넬만을 바싹 뒤쫓았다.

20 아브넬이 뒤를 돌아보면서 "아사헬, 바로 너였구나!" 하고 말하니, 아사헬이 "그래, 바로 나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아브넬이 그를 타일렀다. "나를 그만 뒤쫓고, 돌아서서 가거라. 여기 나의 좌우에 있는 젊은이나 사람 붙잡아서, 그의 군복을 벗겨 가지고 가거라." 그러나 아사헬은 그가 뒤쫓던 길에서 물러가려고 하지 않았다.

22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을 타일렀다. "너는 나를 그만 뒤쫓고, 물러가거라. 내가 너를 쳐죽여서, 너를 땅바닥에 쓰러뜨려야 까닭이 없지 않느냐? 내가 너를 죽이고, 어떻게 너의 요압을 보겠느냐?"

23 그런데도 아사헬이 물러가기를 거절하니, 아브넬이 끝으로 아사헬의 배를 찔렀다. 창이 그의 등을 뚫고 나왔으며, 그는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아사헬을 따르던 사람들이, 그가 쓰러진 곳에 이르러서, 모두 멈추어 섰다.

 

24 그러나 나머지 형제 요압과 아비새는 아브넬을 계속 뒤쫓았다. 그들이 기브온 광야로 들어가는 가의 기아 건너쪽에 있는 암마 언덕에 이르렀을 때에, 날이 저물었다.

25 때에 아브넬을 따르는 베냐민 족속의 군인들은, 언덕 위에서 아브넬을 호위하고 버티었다.

26 거기에서 아브넬이 요압에게 휴전을 제의하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겠소? 이렇게 싸우다가는, 마침내 우리 비참하게 망하고 말지 않겠소? 우리가 얼마나 기다려야, 장군이 장군의 부하들에게 동족을 추격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명령하겠소?"

27 요압이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오. 장군이 이런 제안을 하지 않으셨으면, 군대가 내일 아침까지 추격을 해서, 장군을 잡았을 것이오."

28 요압이 나팔을 부니, 모든 군인이 멈추어 섰다. 그들은 이상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않고, 이상 그들과 싸우지 않았다.

 

29 아브넬과 그의 부하들이 , 밤이 새도록 아라바를 지나갔다.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너고, 비드론 땅을 거쳐서 마하나임에 이르렀다.

30 요압도 아브넬을 뒤쫓던 길에서 돌아와서, 군인들을 점호하여 보니, 다윗의 부하 가운데서 열아홉 없고, 아사헬도 없었다.

31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아브넬의 부하 가운데서 베냐민과 아브넬 군인을 삼백육십 이나 쳐죽였다.

32 요압과 부하들은 아사헬의 주검 메어다가, 그의 아버지가 묻혀 있는 베들레헴의 무덤에 장사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밤이 새도록 걸어서 헤브론에 이르렀을 때에, 아침 해가 떠올랐다.

 

주석
요압(13) 요압은 다윗의 오랜 통치 기간 동안 그의 군대장관이 인물인데,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이 요압의 아우 하나를 살해한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설명한다. 요압의 개인적인 감정은 장에 숨겨진 남아 있다. 감정은 결국 3:27에서 드러나게 것이다(IVP 성경주석).

 

동족 간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지휘관은 젊은이들을 내세워 서로를 붙잡고 죽이게 하는 전쟁놀이를 벌입니다. 청년들이 모두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를 군사들은 적의에 차서 싸우기 시작합니다(12-17). 결국에는 다윗의 군대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요압은 아브넬에 의해 동생 아사헬을 잃고, 이로 인해 진영 간의 화해의 길은 더욱 멀어집니다(18-23).

 

전쟁에 승자는 없습니다. 지휘권을 가진 사람들이 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몰고, 전쟁에서 많은 젊은 목숨들이 스러졌습니다. 동족이 서로 칼을 겨누었던 , 비극적 역사로 인해 고통 받았던 땅에 화해와 평화가 임하길 기도합시다. 분쟁과 갈등으로 싸우고 있는 모든 곳에 폭력은 그치고 진정한 샬롬이 임하기를 기도합시다.

 

——

피할 없는 전쟁이었다. 

다윗의 군대와 사울의 남은 부하들이 서로 전쟁을 해야 했다. 

다음 정권을 차지하는 사람이 누가 되는지 겨뤄야 했다. 

나라에 기름 부음 받은 왕이 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윗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전쟁의 시작은 아브넬로부터였다. 

군사를 이끌고 기브온으로 갔다.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도 기브온으로 출정했다.

기브온 연못에서 군대가 마주 보고 전쟁을 시작한다. 

 

고대의 전쟁들을 보면, 때로 병사들의 무고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양편의 최고의 장수들이 나와 일대일로 겨루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브넬은 자신들의 부하 12명씩을 내세워 전쟁을 하자고 제안한다. 

 

14 때에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젊은이들을 내세워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합시다." 요압도 그렇게 하자고 찬성하였다.

 

결국 양편 12명씩 24명의 장래가 촉망받는 젊은이들이 싸우다가 죽는다.  

싸움을 지켜보던 양편의 군사들은 분노하며 치열한 전쟁으로 번진다. 

 

아브넬은 교활한 인물이다. 목숨 걸고 싸우지 않는다. 아사헬이 자신을 쫓을 ,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너를 죽이고, 어떻게 너의 요압을 보겠느냐?”
그는 전쟁의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최소한 자신은 군대장관으로 남아 요압을 계속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로잡히더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결국 아브넬은 휴전을 제의했고, 군대는 전쟁을 멈췄다. 

내전으로 무고한 젊은이들만 죽음으로 내몰렸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젊은이들이 죽어 나간다. 

미얀마의 시민들과 젊은 군인들도 서로를 죽이고 있다. 

싸움은 사람들이 시작했지만, 결국 죽어 나가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시위는 젊은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력 때문에 피로 물들었다. 

 

어느 사회건 기득권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젊은이들의 희생을 부추기곤 한다. 

굳이 전쟁에 동원하는 극단적인(하지만 종종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경제적 경쟁 구도 속에 젊은이들이 희생 당하곤 한다. 충분한 보상을 하지 못한다. 미래를 살아갈 충분은 자원을 공급받지 못한다. 가정에 맡긴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돈이 많은 가정의 젊은이들은 상당히 앞선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불공평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나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가라는 케케묵은 오래된 논쟁적 질문이 다시 떠오를 밖에 없다. 

과거에 비하면 인권적인 측면에서 분명 하나님 나라에 가까워진 같긴 한데, 그럼에도 여전히 인류의 죄는 차고 넘친다. 진보하는 사회 이면엔 죄의 구조가 모양을 조금씩 바꾸면서 더욱 집요하게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인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노동으로 먹고 산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피를 빨고 있다. 

젊은이들이 희망과 소망을 갖고 사회에 나오는 날을 고대해본다. 

자원도 희소하고 그럴듯한 전망좋은 자리도 희소하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살도록 공평하게 지원금이 지급되고, 기회도 정의롭게 배분되어지면 좋겠다. 

보육원을 나온 18살의 젊은이에게 사회에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금액이 500-800만원이라고 한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485419

 

달랑 500만원 손에 쥐고 길거리에 내몰린 아이들

[부모도 국가도 외면한 18살 보육원생의 홀로서기②]

www.nocutnews.co.kr

 

과연 돈으로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무엇을 있을까? 

제대로 훈련받지고 교육받지도 지원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은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18세를 어른으로 보는 분위기가 아니다. 35살까지도 청년으로 본다. 청년은 아직 미생이다. 

18살에 500만원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더욱 넘치길 기도한다. 

 

 

——

희망과 소망의 하나님,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내려주세요. 

얼마 안되는 돈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보육원의 젊은이들을 보호해주세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이 바뀌게 해주세요. 

많은 젊은이들이 미래를 꿈꾸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보게해주세요.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4 12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악한 자들이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2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3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4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5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6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다.

7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주님만을 애타게 찾아라.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 있다는 자들 때문에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8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9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10조금만 참아라. 악인은 멸망하고야 만다. 아무리 있던 자취를 찾아보아도 그는 이미 없을 것이다.

11겸손한 사람들이 오히려 땅을 차지할 것이며, 그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시인은 악인의 형통함은 풀처럼 금방 사그라질 것이기 때문에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1-2).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며 선을 베푸는 자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그들의 의로움을 한낮의 햇빛처럼 나타내실 것입니다(3-6). 그러므로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되, 악한 자들의 잘됨으로 인한 분노와 격분을 가라앉히고 불평의 말을 그치십시오(7-8).

 

잠시 성공한 것처럼 보이던 악한 자들은 종국에는 멸망할 것입니다. 반면 주님을 찾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받고 주님이 주실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9-11). 악한 자들의 됨을 보면 우리도 부러움이나 원망, 불평이 생길 있습니다. 그럴 우리의 시선이 현재에만 머물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이루실 일들을 붙들 있길 기도합시다.

 

——

 

1. 속상함

시인은 속상해하지 말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현실은 여전하다. 

투기로 타인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 

더러운 욕망은 한계가 없다. 

정당한 부의 추구를 넘어선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투기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속상하다. 

 

솔직히 나가는 악인이 부럽지는 않다. 그들 내면도 고통이다. 관계도 엉망이다. 

돈이라는 욕망의 화신에 매여 사는 삶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욕망에 굴종해 타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고, 자신의 배를 채우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 있지, 시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속상하다. 

많은 , 많은 행복의 기회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빼앗았다.

결국 기회의 박탈이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극단적인 생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조금 풍족했다면, 조금 친구들이 많았다면, 조금 사회적 돌봄이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속상하다. 

 

2. 애타다

시인은 애타게 주님을 찾으라고 권하고 있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추구했던 바이다. 나는 우주의 주인을 애타게 찾아왔다. 

내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고,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었다. 

어렸을 , 그것만이 나를 지킬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나의 약점과 부족함을 극복할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하나님을 찾았다. 

 

실용성이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이유로 그분을 애타게 찾는다. 

그저 그분이 정말 존재하는지 더욱 확인받고 싶다. 

믿음이 아니라 확실성에 거하고 싶다. 

그래서 그분을 찾는다.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의 존재를 믿는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깊이 경험하고 싶다. 열망을 어찌 막을 있단 말인가!!

그분의 임재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그분의 일하심을 간절히 기다린다. 

 

악인이 어찌되는 것은 현재 나에게 중요하다. 

의인의 어떻게 빛나게 되는 것도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감정의 이유까지 내가 닮아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시인의 감정이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애타게 간절히 매일 매주 그분의 임재와 일하심을 추구한다. 

그게 나를 살린다.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3. 뿌리 뽑혀야

미얀마의 참상을 뉴스를 통해 듣는다. 

나를 죽여라젊은이들을 향해 발포하는 군경들 앞에 무릎을 꿇은 수녀의 외침. 

수녀는 살았으나, 그의 눈앞에서 청년이 포악한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985952.html

 

수녀 또 무릎 꿇었지만…무자비한 미얀마 군경에 2명 사망

일부 군경도 수녀 앞에서 무릎 눈길군부, 대학 점령·주택가 무차별 총격여성단체, 전통치마 타메인 시위남부 카렌반군 무장하고 시위대 보호

www.hani.co.kr

21세기, 휴대폰, SNS… 일상의 실시간 중계가 가능한 세상이 되었건만, 역시 악은 성실했다.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국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국회의 일정 좌석을 항상 차지하게 하는 헌법에 보호를 받는다. 

군대, 정치, 경제막강한 권한이다. 마치 예수님 시대의 로마 제국을 보는 같다. 

대마불패, 그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득권과 권한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순간, 이렇게 쿠테타가 일어난다. 피를 부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들을, 악을 참아야 하는가! 

 

오늘 시인이 현대에 살고 있다면, 분명히 거대악에 대항해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9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저주를 퍼붓는다. 

비무장한 시민들에게 발포한 군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를 

자연과 만물이 나서서 그들의 사지를 묶고, 입술을 꿰매기를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전국이 유혈이 낭자한 킬링필드가 되고 있다. 

막아 주실 분이 가만히 계시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희생자가 된다. 

이것도 속상하다. 

 

어쩔 없이 간절히 부르짖는다. 

주님, 악한 자의 뿌리를 뽑아 주세요!”

 

——

악의 뿌리를 뽑으시고, 새로운 세계를 여신 주님을 높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현실에서는 악이 판을 칩니다. 

인간의 악독함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자기보호가 살인을 낳고 살인이 전쟁을 낳습니다. 

미얀마의 악을 보고 계십니다. 

미얀마의 시민들을 주님께서 돌봐주세요.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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