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3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6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8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두루 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는 우리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그들은 말합니다.

 

NIV

for they themselves report what kind of reception you gave us. They tell how you turned to God from idols to serve the living and true God(9절),

 

주석

환난(6절) 상당한 비율의 그리스도인이 이방인 배경에서 회심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훨씬 더 큰 적대감에 직면했다(IVP 성경배경주석).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6절). 또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섰으며(9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10절). 데살로니가에 나타난 복음의 역사는 사방에 두루 퍼져 많은 이에게 기쁨과 모범이 되었습니다(7-8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후 완전히 변화된 삶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러 핍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통한 기쁨을 누렸고, 우상을 떠나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렸습니다. 복음은 말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나타나게 됩니다(5절). 내 삶에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길 간구합시다.

 

[오늘의 묵상]

1. 모범 성도

바울은 정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랑스러운가 보다. 

그의 편지의 첫 부분은 성도들을 사랑이 꿀 떨어지듯 떨어진다. 

성도들은 환난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님의 도우심, 기쁨, 깨달음, 확신으로 통해 극복했다. 

마치 바울과 그의 선교단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도들도 예수님을 닮았고 본 받았다. 

주목할 단어는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다. 

예수님만 닮은 것이 아니라 바울 선교단을 닮았다. 

이 글을 쓸 때, 바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기쁨이 가득했을 것이다. 

감사가 넘쳤을 것이다. 

사랑이 퍼졌을 것이다. 

예수님을 닮는 것도 너무 귀한데, 그걸 넘어 바울을 닮는다.

자신을 닮아가는 성도들이 너무 좋다. 

웃음이 난다. 

 

그러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다른 지역의 성도들에게 모범이 된다.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성도들에게 귀감이 된다. 

그들이 어떻게 환란 속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가는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매우 힘든 일이지만, 이 일을 감당하고 있다. 

고난 속에서도 환란 속에서도 과연 기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에게도 던져진다. 

큰 고난은 나에게 없다. 

사실 여러 가지 사역을 진행하는 것이 고난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그러나 사역을 하면서 겪게 되는 정서적 충격은 항상 있다. 

회의를 하면 언제는 반대되는 의견의 충돌이 생긴다. 

의견 충돌은 사실 당연한 것이며, 회의는 그런 것을 하기 위해 있는 자리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 힘이 빠지는 말과 태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면, 여러 가지 생각과 마음이 올라온다. 

과연 그렇게 복잡하고 우울한 생각 속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바로 그점이 내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다. 

때로는 우울을 즐기는 성향도 있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가면을 쓰지만, 혼자 있을 때는 그 성향을 마주할 때가 많다. 

그러기에 그 마음 속에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오늘도 성령님의 기쁨으로 살아가고 싶다. 

 

2. 소문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 대한 소문이 좋게 퍼지고 있다. 

전문맥에서도 바울이 말한 바, 성도들은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9절과 10절이 그 증거다. 

 

9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그들은 말합니다.

 

1) 어떻게 ~~ 영접했는지 => 사랑의 수고 

2)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롤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 => 믿음의 행위 

3) 어떻게 ~~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 => 소망의 인내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성도들은 바울 선교단을 최선을 다해 영접했다. 

마음과 물질로 섬겼다. 

바울 선교단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들의 말씀을 듣는 것을 기뻐했다. 

맛있는 식사를 나누는 것도 좋아했다. 

이 모든 시간이 환대다. 

환대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가능하다.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 믿음이 우상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만을 섬기게 했다. 

이방인들이 그들이 섬기던 우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평생 섬기던 신이었다. 

가족 친지들이 모두 섬기던 신이었다. 

그 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자신의 뿌리와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 일을 해냈다. 

그 과정에서 환란이 찾아왔지만, 거뜬히 이겨냈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소망을 가지고 현재를 이겨내고 있다. 

소망의 인내가 그들의 삶의 스타일이다. 

언제가 그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은 속이 터지고 힘들어도 예수님이 오실 것이다. 

그분이 오시면 새로운 나라가 완성된다. 

하나님의 통치가 하늘에서 바다 끝까지 온 우주를 덮을 것이다.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7살 아들 녀석이 자꾸 죽음에 대해 물어본다. 

묻다가 100년 후에 아빠가 죽게 된다는 말에 울음을 터트린다. 

아빠랑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 죽음에 대한 공포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아님 자신의 존재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에게 우린 영원히 산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믿으면 영원히 그분과 살게 된다고 말했다. 

울음을 그쳤다. 

아들이 그렇게 슬퍼하니, 나도 진짜 아들과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니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버렸다. 

사실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 당연한 것이며,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영적 삶이 펼쳐 질 거라 알고 믿기에, 죽음에 대해 담담한 편이며, 때로 주님께서 언제든지 데려가신다면 크게 원망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갈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나의 죽음에 대해 저렇게 슬프게 우니, 이상하게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사랑의 힘인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이런 고민이 사라진다. 

슬픔이 사라진다. 

두려움이 없어진다.

아들에게 확신을 갖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우린 이제 영원히 같이 살게 된다고!

 

아마도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현재의 어려움과 환란을 인내로 이기고 있었을 것이다. 

현실의 즐거움이 아니라, 미래에 올 더 큰 즐거움을 가지고 현실을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셩령님이 주시는 기쁨은 현실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소문이 퍼진다. 

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성도들도 위로와 격려와 도전을 받는다. 

사랑, 믿음, 소망이 정서와 생각에서 머물지 않고 실제 행위와 행동을 낳는다. 

이런 선순환이 생기면 교회는 성숙하고 성장한다. 

 

내가 섬기는 공동체에 이런 선순환이 생기길 소망하게 된다. 

정서와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과 행위로 나아가길…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살아가길… 

오늘도 그런 날이 되길… 

 

[오늘의 기도]

우리의 모범 되신 예수님, 

당신을 따르기 원합니다. 

당신을 본받기 원합니다. 

동시에 제가 본받을 만한 신앙의 선배를 허락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본받고 앞선 신앙의 선배를 본받기 원합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 본이 되는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완전함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도와주소서. 

 

현실은 암울합니다.

정부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경제는 곳곳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외교의 참사가 겹치면 결국 전쟁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주님, 이 땅을 굽어 살펴주소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셔서 그들이 회복되게 해 주소서. 

 

성령님의 기쁨이 모든 성도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허락하소서. 

믿음 위에 행위를 더하시고, 사랑 위에 수고를 더하시고, 소망 위에 인내를 더하소서. 

끝까지 주님께서 하실 일을 믿고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5. 23. 김혁수 

[본문_야고보서 2:1-17]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2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3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당신은 거기 있든지, 발치에 앉든지 하오하고 말하면,

4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6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7여러분이 받드는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8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라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 받게 됩니다.

10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간음하지 말라하신 분이 또한살인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12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설교]
0.
들어가며
역시 야고보서는 난해합니다. 때로 성경 저자가 명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가지 관점으로, 딜레마 혹은 트릴레마 없이 평이하게 이해되는 글로 적혀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 말이죠. 

 

바울의 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야고보의 글은 너무 단도직입적입니다. 바울의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서 보이는 신학적 진술, 그리고 토대 위에 설계된 생활 윤리, 공동체 윤리이렇게 집을 지어가야 이해가 그나마 쉬울 텐데, 야고보는 단도직입적으로 시험에 인내하라, 분노하지 말고 조심하라, 그리고 차별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서 같기도 하고, 규정집 같기도 하고, 여튼 신학이 정확히 노출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고 어떤 토대에서 말하는지 흐릿해서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문맥도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자유를 주는 율법같은 개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적용되는 상황에서도 율법의 기능을 강조하는 야고보의 언급이 빨리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초기 지도자 야고보는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서 특별한 갈등과 긴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둘을 통합해서 조화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한번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차별 노노

확실히 야고보서는 개인의 윤리가 아니라 공동체 윤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세계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편지입니다. 공동체 내외부의 위기를 겪고 있음을 초대 교회 지도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박해와 같은 외부의 핍박과 시련을 인내하라고 편지의 1장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분노의 말을 삼가며 성경 말씀을 실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장의 내용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분노의 말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야고보는 그걸 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가 눈여겨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동체내에 존재하는 차별입니다. 2-4절을 읽어봅시다. 

 

2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3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 하고 말하면, 4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비슷한 경우가 발생했음을 우리는 충분히 추측할 있습니다. 왜냐면, 당시에 편지를 쓴다는 것은 오늘날 이메일을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며 비용도 많이 드는 일입니다. 필요한 내용만 넣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예를 들었다는 것은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 모범 되신 예수 그리스도 

기독 공동체에 암암리에 녹아 있는 차별을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그냥 넘어갈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원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차별이 사라져야 했습니다. 부자와 빈자 사이에 놓인 차별의 간극을 메워야 했죠. 야고보가 사용한 논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차별해야 하지 않아야 하는 번째 이유는, 야고보의 형제 자매가 우리가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영광의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부자/빈자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우 단순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은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경험한 예수님에 관한 충격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12제자들을 뽑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더니 갑자기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원래 이런 소문은 삽시간에 번지잖아요.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을 시간조차 없습니다. 밀려오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자리에 앉히고 순서를 정해서 병도 고쳐 주시고, 귀신도 내쫓으십니다. 그런데 너무 갑자기 인기를 얻으니 사람들의 시기 어린 가짜 뉴스가 돌기 시작합니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것입니다. 혹은 악한 귀신이 들려서 귀신이 벌이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런 소문이 누구의 귀에 들어갔냐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가족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형님을 찾으러 갑시다. 가서 더이상 외부활동을 하지 않도록 집에 가둬둡시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갔고, 결국 어머니와 동생들, 특히 야고보를 필두로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해서 그냥 가까이 오기엔 불가능해보였죠.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예수님의 가족들이 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지난 30 동안 함께 보냈던 형님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마가복음 3: 33-35)

 

그렇습니다. 야고보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에겐 혈통/혈육 조차도 특혜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와 여인들을 선대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친가족이라고 해도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그의 동생 야고보는 보았던 거죠. 충격적인 예수님의 말에 당시에는 분개했지만, 나중에는 알게 되었죠. 그분은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사람들의 외모, 외형, 권력과 돈의 유무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적을 있었던 겁니다.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본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남자건 여자건, 부자건 빈자건 간에 공평하게 대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입니다. 최근 서울시장, 부사시장 보궐선거 이후에 남녀의 성갈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십대 남자들이 대거 국민의힘을 지지하게 되면서 이유에 대해 궁금함이 많이 커졌습니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염려가 되는 부분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과 감정의 골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베, 메갈 등의 단어가 서로를 향한 혐오를 드러냅니다. 

 

3. 인생역전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차별하지 말아야 번째 이유도 적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5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세상을 다스리면서, 혹은 개입하시면서 사용했던 방식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빈자를 택해서 믿음의 부요한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아이러니 한데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능력있고 부유한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기 보다는 볼일 없어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이입니다. 

 

여러분, 부자들은 쉽게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곤 합니다.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 빈자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운영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많은 결정을 내려왔고, 많은 일들을 왔습니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이고, 보수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애적입니다. 어쩔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그렇게 밖에 없습니다.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죠. 생각의 메커니즘, 행동의 방식이 고착화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하게 됩니다. 부자의 논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하나님 나라는 빈자들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통치하고 관리하고 경영하는 권리가 생긴 것이죠. 부자들에게만 주어졌던 권리가 이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업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실 있습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바울이 빌레몬서에 드라마틱하게 등장합니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의 돈에 손해를 입히고 도망자가 됩니다. 우연히 로마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게 되죠. 그리고 바울의 사역에 동참합니다. 그럼에도 노예 도망자의 신분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죠.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대하라고 말이죠. 나중에 오네시모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어 바울의 편지를 모아 정경화 하는 과정 속에서 빌레몬서를 신약 성경에 포함시키게 되죠. 

 

야고보는 알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생역전의 드라마가 곳곳에 넘쳐납니다. 그러니 결코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참고)  서종현 선교사의 삶과 사역

https://www.youtube.com/watch?v=yv6mgVT0sLM

http://www.gospe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51

 

 

4. 율법 순종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야고보는 생각보다 치밀합니다. 논거들을 가지나 드는 것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야고보가 생각하는 차별하지 말아야 번째 이유는, 율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8-12절입니다. 

 

8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10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그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12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율법의 주요 강령은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으뜸가는 율법을 지키는 중요한 방법이 바로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와 빈자를 구별해서 다르게 대우하지 말라는 것이죠. 율법의 정신을 제대로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혼자 산다면 굳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그저 하나님께 시기에 맞춰 예배하고 찬양하면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공동체적, 사회적 존재이기에 법이 필요하고, 법과 규정은 개인과 공동체를 자유하게 합니다. 자유란 무엇이든지 있는 자유가 아니라, 서로를 해하지 않을 있는 자유까지 포괄하죠. 죄를 짓지 않을 있는 자유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욕구대로 하면, 자유를 얻을 없습니다. 욕구대로 하면, 이웃 아니라, 가족과 자기 자신조차도 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니 법은 포괄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와 사람들을 용서하고 은혜가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율법이 가져다 주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이 죄인을 용서한다해도, 여전히 율법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나요?  율법도 그렇습니다. 물론 억압과 부자유의 율법이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주는 율법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율법이 바로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같은 것이죠. 

 

저는 사실 순종하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순종은 비판적인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변명같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가 드니까 율법에 순종하라는 말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지성은 한계를 가집니다. 정보는 쌓이고 게다가 방대해집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해를 최신의 지식으로 하려고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육체는 늙고 지력은 줄어듭니다. 이상 혁신적인 생각을 받아들이는 한계를 느낍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보편적이고 절대 불변의 말씀에 귀의하고 싶어 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직 육체는 젊고 생각이 싱싱하기에 무엇이든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할 있다고 믿으시죠?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때로는 필요합니다. 젊은 자기만의 생각을 갖는 , 포스트모던 시대에 주체적인 신앙의 자아를 형성하는 , 너무도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일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순종의 의미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우리 나름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5. 나가며_차별하지 않는 공동체 

야고보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기독 공동체가 빈부의 차이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하게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셋째, 율법이 이웃 사랑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공동체를 꿈꿔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단순히 개인 윤리의 책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책입니다. 차별이 없는 공동체가 되도록 지속적인 리플렉션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계속해서 돌아보고 잘못한 것은 뉘우치고, 잘하는 것은 더욱 잘하도록 격려하며,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개인도 일기를 쓰지만 공동체도 그렇게 일기를 내려가야 합니다. 

 

부자와 빈자가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 남녀가 차별대우 받지 않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 있을까요? 

어떻게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있을까요? 

이건 혼자의 고민, 혼자의 기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의 고민,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야 것입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우리 공동체의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면 어떨까 논의 중에 있습니다.  급한 재정적 필요가 있는 분들은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공동체 모두가 함께 기금을 마련해서 돕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도 오늘의 말씀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우리 안에 있는 편견이나 차별의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제거할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우리 주변에 고난 받은 사회 경제적 약자들을 도울 있는 우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 기도] 

1.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나요? 때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2. 나와 우리 공동체가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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