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30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7 여러분은 겉모양만 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면,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 것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스스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8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위를 내가 좀 지나치게 자랑했다고 하더라도, 그 권위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우라고 주신 것이므로,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9 나는 편지로 여러분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10 "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할 때에는, 그는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로 쓰는 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석

겉모양(7절) 고린도인이 겉모습을 지나치게 중요시한 것은 궤변론자들이 적당하고 설득력 있는 말에만 신경을 썼던 것과 비슷하다. 더 부유한 고린도인은 바울이 자신들의 문화적 기준에 따르지 않는다고 공격했다(IVP 성경배경주석).

 

겉모양만 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지 못합니다(7절). 바울의 권위는 겉모양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이 권위는 사람을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8절).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린도 교회를 대했습니다(9-11절). 

 

사람이 보기에 바울의 겉모습은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 또한 당시 헬라의 웅변가들과 비교했을 때 변변치 못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관용과 사랑과 헌신을 권위로 인정하지 않고, 멸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담대하게 자신을 변호합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세우기 위한 권위였기 때문에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힘과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

여전히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단순히 웅변가, 달변가가 아니라, 재밌으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잘 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대중 강연자로 나서는 사람들은 대체로 재밌고 메시지가 뚜렷하다. 

세바시, 테드에 나오는 사람들은 각 계의 전문가 이기도 하지만 전달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다. 

김미경, 김창옥, 설민석 등의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이제 유투브를 통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 

 

바울 시대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나보다. 

사람들은 희랍의 여러 철학자들, 웅변가들, 소피스트 들의 말을 더 재밌고, 권위있게 느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비슷한 관점으로 바울을 평가한다. 

달변이 아닌 것을 넘어 도리어 말 주변이 없다고 평가한다. 

한 두 사람의 평가를 이렇게 편지에 담지는 않았을 터. 

게다사 한 두 사람의 평가가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 

고린도교회 지도급의 사람들 사이에서 바울에 대한 비슷한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내용이 바울에게까지 들렸고, 바울은 아쉽고 슬프고 약간 뽐새가 빠지는 말이지만, 자기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우고 있다.

자기 스스로 변호해야 하는 상황이 바울에게는 무척 아쉽고 안따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건강한 권위가 필요했다. 

복음을 왜곡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집중하게 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로 바꾸어야 했다. 

누군가는 크게 혼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교회를 떠나기도 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해 바울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일에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단, 사이비를 분별하고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그 때 사용되는 권위가 건강한 권위이다. 

교회를 세우는 권위다. 

성도들을 보호하는 권위다. 

권위자의 안위가 아니라 성도의 안위를 위해 사용되는 권위이다. 

 

바울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평가가 있었다. 

글은 힘이 있어 보이지만, 실상 만나면 말주변이 없다는 식의 평가다. 

바울이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언급한다. 

편지에서의 말과 실제 행함에서의 일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비판자들은 글과 말이 다르다고 비평하지만, 바울은 말과 일의 일치를 언급한다. 

이 지점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말이나 글이나 지적 작용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내면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행함은 나를 넘어서는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일어난다. 

말과 글은 진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행함이 진정성을 드러낸다. 

말과 행함이 일치한다면, 그것은 성인에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글과 말은 사람마다 개인적 특징이 있고 능력에 차이가 난다. 

핵심은 말글이 자신의 행동과 일치하느냐이다. 

로고스만 아니라 에토스가 따라와야 한다. 

말이 실천적 윤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과연 그의 진정성을 어떻게 확보하겠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말하고 써야 한다. 

사실의 적시야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위적 언명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해야 한다” “하라” 등의 문장과 말을 했을 때는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그게 설교자의 고문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말과 글로 고문을 당한다. 

그 높은 기준을 스스로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가르치면서도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피하지 않으면서, “해야 한다”로 강조하는 사람들이 설교자다. 

 

바울은 자신이 말한 것을 어느 정도는 잘 지켜내고 있었던 것 같다. 

복음에 대해서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서도,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진정성은 주변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였다. 

그렇다고 완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족한 것이 있었기에, 스스로 죄인 중의 괴수라는 표현도 쓰고, 곤고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다고 모든 편지에 절절히 썼다. 

자비량 선교사로서 사람들의 헌금에 의존하지 않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거보다 더 대단한 것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거룩으로 나아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고백한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말이다. 

 

자신이 말한 대로, 글 쓴대로 사는 사람들이 존경받아야 하고, 대우 받아야 한다. 

그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 

말글과 행함이 일치하는 사람.

그 일치를 위해 매일 매일 노력하는 사람. 

나의 원너비다. 

쉽지 않으니 고문과도 같지만 말이다. 

기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의 말과 글이 저의 행동과 일치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게 해 주세요. 

그것 또한 제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매주 하는 설교, 매일 쓰는 묵상글… 

모든 것이 기록에 남습니다. 

부끄럽고 또한 두렵습니다. 

제가 한 말과 글로 저를 평가한다면, 생각조차 두렵습니다. 

최선을 다해 매일 노력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억지로 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고, 도와주세요. 

 

오늘 저녁에 예배가 있습니다. 

Youth-worship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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