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26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14 모세와 아론의 조상은 이러하다.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아들들은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인데, 이들이 르우벤 가문이다.

15 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소할과, 가나안 여자가 낳은 아들 사울인데, 이들이 시므온 가문이다.

16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태어난 순서대로,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인데, 레위는 백삼십칠 년을 살았다.

17 게르손의 아들들은 가문별로는 립니와 시므이이다.

18 고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인데, 고핫은 백삼십삼 년을 살았다.

19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이다.

이들이 세대별로 본 레위 가문이다.

20 아므람은 자기의 고모 요게벳을 아내로 맞아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 아므람은 백삼십칠 년을 살았다.

21 이스할의 아들들은 고라와 네벡과 시그리이다.

22 웃시엘의 아들들은 미사엘과 엘사반과 시드리이다.

23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이요 나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와 결혼하여,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다.

24 고라의 아들들은 앗실과 엘가나와 아비아삽인데, 이들은 고라 가문이다.

25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부디엘의 한 딸과 결혼하여, 비느하스를 낳았다. 이들이 다 가문별로 본 레위 일가의 조상이다.

26 이스라엘 자손을 부대별로 편성하여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주님의 분부를 받은 이들이, 바로 이들 아론과 모세이고,

27 이집트의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 달라고 말한 이들도, 바로 이들 모세와 아론이다.

 

모세와 아론의 족보는 아버지 아므람에서 그 위로 고핫, 레위, 이스라엘에 이릅니다(14-20절). 창세기 저자는 이스라엘 자손을 부대별로 편성하여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주님의 분부를 받은 이들이, 바로 아론과 모세라는 것을 강조합니다(26절).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의 갈등이 고조되는 흐름에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끼어듭니다. 이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이 잠시 중단됩니다. 갈등을 겪거나 사람들로부터 지지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잠시 멈추어서, 내가 누구인지 돌아봅시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묵상]

최근에 족보를 찾아본 적이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족보에 아직 내 이름이 제대로 등재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아버지께서 이미 올렸다고 하셨지만, 아주 오래전 종이로 족보를 정리하던 때의 일이다. 

누락되었는지, 아님 돈을 주고 인터넷에 등록해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이름이 내가 알고 있었던 가문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상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서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뭔가 빠진 느낌이 든다. 

과거 구한말, 족보를 사고 파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집도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왠지 정확한 뿌리를 알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누구로부터 왔는가? 내 조상들은 어떤 분들이었나? 

 

모세와 파라오의 본격적인 대결을 앞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세와 아론은 여러모로 실망스런 상황 앞에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경 저자는 이 상황에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의 족보를 꺼내든다. 

뜬금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먼저, 모세와 아론에게 필요한 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이다. 

흔들릴 만도 하다. 동족에게 의심받고 미움받고 있다. 

파라오는 꿈쩍도 안한다. 

모세입장에서 자신이 왜 80년만에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만하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데,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 

그 이유 중 하나가, 자신들의 정체성 자체가 이스라엘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분명하게 레위-고핫-아므람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있는 집안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집안 사람이 아니다. 

분명한 계통이 있고, 혈통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민족을 위해 섬겨야 할 필요가 생긴다. 

 

 

둘째, 모세와 아론의 부르심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 

본문을 통해 창세기 저자는 모세와 아론의 부르심을 여러 번 강조한다.

특히 26-27절이 그렇다. 

 

26 이스라엘 자손을 부대별로 편성하여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주님의 분부를 받은 이들이, 바로 이들 아론과 모세이고,
27 이집트의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 달라고 말한 이들도, 바로 이들 모세와 아론이다.

 

주님의 분부를 받는 이들, 파라오에게 대담하게도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 달라고 말한 이들, 바로 모세와 아론이다. 

이 사실을 만방에 알리고 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 역할을 맡기신 사람, 소명을 준 사람이 바로 모세와 아론이다. 

이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다. 

여타의 다른 사람들의 공로로 대체할 수 없다. 

자신들의 쿠데타 시도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언론 플레이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왕궁에 있는 몇몇 유력한 히브리 정치인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이스라엘의 구원과 구출의 최고의 기여자는 하나님이요, 그 다음이 모세다. 

그러니 역사를 왜곡하지 못하도록 아주 분명하게 적시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인류 구원도 그렇지 않던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인간의 계획과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셋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군대 형태의 체계를 세워서 광야로 나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부대별로 질서있게 광야로 나오기를 기대하셨다. 

효율적인 부대 편성은 지파별로, 가문별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쨌든 지파별 가문별 정리가 필요했다. 

족보 정리가 등장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족보 정리가 자칫 파라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안그래도 대규모의 민족 이동이 가져다줄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파급력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파라오는 이런 족보 정리로 인해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아 이들이 결국 군대를 편성하려고 하는구나.’

‘안그래도 자손들이 번성하던데, 이들을 방치하면 큰 골칫거리가 되겠구나.’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뜬금없어 보이는 족보 이야기의 의미를 찾아봤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야기에도 의미가 있다. 

뜬금없어 보이는 사건에도 의미가 있다. 

숨겨진 의미를 찾아 보는 것도 신앙 생활의 재미다. 

하나님은 종종 뜬금 없이 행동하신다. 

그건 나의 생각의 프레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넓은 시야를 가지신 분의 행동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템포 쉬었다 가라고 하시기도 하신다. 

멈춰두었던 계획을 새로이 펼치라고 하신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으로 길을 여신다. 

 

오늘도 뜬금없는 분을 기대한다. 

어떤 만남, 어떤 사건, 어떤 이야기들이 오늘 하루에 숨어져 있을까? 

혹시 내 족보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려나? 

 

 

[오늘의 기도]

참 뜬금없으신 주님, 

주님의 계획을 잘 알지 못하기에 주님의 인도하심이 뜬금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 뜬금없으심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아직도 이 부르심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또한 재밌습니다. 

주님을 따를 삶은 일종의 모험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작은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시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주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주께서 숨겨 놓으신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의미들을 발견하게 하시고, 

오늘 하루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큰 계획의 모자이크 한 조각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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