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12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1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2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5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6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주석

불꽃, 신을 벗음(2, 5절)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에서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출애굽 이야기 도처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불과 연기로 상징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하나님의 위엄 있는 본성 때문에, 신중하게 하나님께 다가가야 했다. 모세는 자기 신발을 벗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했다(IVP 성경주석). 

 

모세는 장인의 양 떼를 먹이기 위해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나타납니다(1-2절). 신비한 현상에 주목한 모세는 떨기에 가까이 갑니다. 그 때 하나님이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모세는 두려움 가운데 응답합니다(4-6절). 

 

하나님은 평소에 익숙해서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떨기에 불꽃으로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십니다(2, 4절). 수많은 정보와 자극들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일상 속에서, 내가 주목해야 할 떨기나무의 불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실천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집트에서 40년, 미디안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 이렇게 모세의 인생이 구분된다. 

40년간 모세는 장인의 양 떼를 치는 목자로 살아간다. 

야곱도 장인의 집에서 오랫동안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다. 

자기 본향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정착하는 곳은 처가다. 

40년간 그는 이집트의 삶을 거의 잊어버렸다. 

성실한 목자로 살아간다. 

민족의 고통을 대변하는 대변인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동족에 대한 불의한 사회구조에 저항하는 투사의 삶에서 멀어졌다. 

이제는 양을 치며, 가족을 돌보며, 일상을 별 탈 없이 살아간다. 

 

지극히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항상 보오던 떨기 나무가 이상하다. 

불길이 올라 황급히 양떼를 불로부터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자리에서 똑같은 양상으로 불이 머물러 있었다. 

번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불색깔도 이상했다. 뭔가 특별한 빛이 흘러나왔다.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모세는 이런 기이한 현상에 대해 궁금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모세를 부르신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두 번 부르셨다. 

모세는 어떤 신이 자신을 부르는지 몰랐지만, 이렇게 기이한 이적을 행하시는 신이라면 일단 대답을 해야 했다. 

이어서 음성이 들린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이곳은 거룩한 곳이다. 네 신을 벗어라”

평소에 다니던 길이다. 평소에 보았던 땅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땅이 거룩한 곳이라 하시니, 놀라웠다. 

새롭게 발견한 땅이 아니었다. 평소에 못보던 깊숙한 동굴도 아니고, 산속 깊은 곳도 아니었다. 

그냥 평소처럼 양떼를 먹이기 위해 호렙산에 왔을 뿐이다. 

지난 40년간 들락거리던 장소다. 

갑자기 거룩한 곳이 되었다면, 그것은 지금 그 곳에 신적 현현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상의 평범한 장소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거룩한 땅이 된다. 

 

지금 말씀을 읽고 성경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곳이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이 있는 곳, 그곳은 어디나 거룩한 곳이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당 안만 거룩한 곳이 아니다. 

어떤 요일, 어떤 장소도 그분의 임재와 현현이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다. 

 

모세에게 다가온 분은 히브리 민족의 신이었다. 

이집트에서도 많은 신을 보고 알았다. 

미디안의 제사장이 섬기는 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 민족의 신은 사실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신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들었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조상들과 함께 했던 신,

그분들에게 약속을 주셨던 신, 

그래서 한 때는 그 신의 약속을 믿고 동족들의 아픔에 더욱 공감하게 만들었던 신, 

그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가끔씩 그 신이 어디에 계시는지, 도대체 왜 히브리 민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지 궁금했었던 모세에게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타지 않는 불로 나타나신 것이다. 

 

몸이 굳는다. 입술이 떨린다. 소름이 돋는다. 그토록 마음 속에서 찾았던 그 신이 눈 앞에 등장한 것이었다. 

모세는 얼굴을 가린다. 

그 하나님의 영광이 두려웠다. 

혹시나 죽을까 두려웠다. 

너무 가까이 온 것이 무서웠다. 

존재가 흔들린다. 그간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신은 실재했던 것이다. 히브리 민족의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나 동화가 아니었다. 실제였다. 

구전되어오던 민족의 역사는 진실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서워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성경이 사실이라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사실이라고? 교회가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물론 믿음의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까마득히 아련히 잊고 지내던 일들이 불현듯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해결되지 않았던 의문이 풀어진다. 

의문을 품고 묻어두었던 희미한 기억들이 되살아나 제자리를 찾아간다. 

모자이크가 완성된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그분의 임재와 존재에 대한 확신은 그동안의 삶의 경험과 기억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삶이 해석된다. 

왜 내가 이 자리에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러니 모든 일상의 자리, 예배의 자리, 묵상의 자리, 기도의 자리가 다 소중하다. 

언제든 그분이 끼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내 삶에 끼어드는 것, 그것을 좀더 자주 좀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더욱 기쁠 것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죽음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다. 

그제 DMC 지하철 역에서 숨이 멎은 분을 보았다. 

심폐소생술이 먹히지 않았다. 

축 늘어진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지하철에서 숨을 거둔 듯 보였다. 

구급요원들이 와서 응급 조치를 취했고, 주변의 사람들을 뒤로 물렸다. 

다음 열차를 타느라 다시 사셨는지, 아님 운명하셨는지 알 길은 없다. 

처음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직접 본 것은 말이다. 

10. 29 참사가 떠오른다. 

세월호가 떠오른다. 

죽음은 항상 내 옆에 있다. 

 

허망한 죽음, 사단에게 예속된 죽음을 막기 위해 하나님이 오셨다. 

모세에게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셨다. 

 

오늘도 주님의 개입하심을 꿈꾼다. 

 

 

 

[오늘의 기도]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제가 드렸던 기도는 기억합니다. 

IVF 간사로서, 사역자로서 하나님께 헌신했던 기도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약속해 주세요. 

제 삶을 가장 아름답고 선하게 이끄실 것을 저에게 약속해주세요. 

그리고 그 약속을 끝까지 기억해주세요. 

저는 자주 잊어버립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일상에 침투하시는 하나님, 

오늘의 삶 한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당신의 말씀을 던져주세요. 

언제 당신께서 침투하시고 개입하실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기 원합니다. 

감각을 깨워주세요. 

다시 와이파이를 연결하게 하소서. 

주님께 연결되는 순간 순간이 더욱 많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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