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2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28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목마르다하고 말씀하셨다.

29거기에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우슬초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예수께서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 이루었다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

31유대 사람들은 날이 유월절 준비일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시체의 다리를 꺾어서 치워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안식일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32그래서 병사들이 가서, 먼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다리와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나서,

33예수께 와서는, 그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서, 다리를 꺾지 않았다.

34그러나 병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이것은 목격자가 증언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는 자기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여러분들도 믿게 하려고 증언한 것이다.)

36일이 이렇게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37 성경에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쳐다볼 것이다 말씀도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성경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목마르다고 말씀하시며( 69:21 참조) 신포도주를 받으십니다(28-30). 또한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으셨다는 (유월절 양을 잡을 양의 뼈를 꺾지 않음, 12:46 참조) 통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는 유월절 어린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31-33).

 

요한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물과 나온 것을 기록함으로, 그가 육체적으로 완전히 죽었다는 것과 그의 죽으심의 의미를 드러냅니다. 그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고 용서하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었습니다( 12:10 참조). 십자가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묵상해봅시다.

 

——

 

 

날이 왔다. 예수님의 지난 3년간, 아니 인생 전체를 결산하는 날이 왔다. 

가열차게, 쉴새없이, 종횡무진 지난 3년을 살아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무수한 이적/기적들을 행하셨다. 

귀신도 많이 내쫓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기 위한 설교와 강의도 이어졌다. 

반대하는 사람들과도 끊임없이 논쟁하셔야 했다. 

죽이려는 자들의 마수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것이다. 

 

가상칠언,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과연 말씀만 하셨을까. 아니 말씀은 그것만 했다고 치더라도, 수많은 생각들과 장면들이 떠오르셨을 것이다. 세례요한과의 만남, 제자들을 삼으심, 병자/귀신들린 자들 고치심,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오천명을 먹이심, 성전정화사건, 나사로를 살리심, 마지막 만찬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지난 3 아니 자신의 인생 전체가 지나갔다. 뚜벅뚜벅 날을 준비하며 살아왔다.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는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날이 오자, 결코 피하지 않으셨다. 당당히 날을 맞이했다. 

 

십자가 위의 6시간 동안, 예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오늘의 묵상은 예수님의 생각에 닿아 있다. 

육체적 고통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기 백성이 자신을 찌르고 조롱하고 죽인다. 

배신감, 사랑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

울분, 억울한 죽음 보다 피할 없는 삼위 하나님과의 단절, 그로 인한 울분. 

육체적, 정서적, 영적 고통 모두 예수님의 머리를 채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지배했던 것은, 최소한 요한이 보기에, 성취였다. 

자신의 인생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지고 죄가 들어온 이후부터 줄곧 추구했던 . 

오랜 기다림의 . 

가상칠언이 아닌 가상만상(십자가 위에서의 가지 생각) 영원을 품은 성취였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만들어진 드라마의 모든 떡밥이 거두어졌다.

그간의 암시, 복선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언약이 성취되었고, 약속이 지켜졌다. 하셨던 말씀이 그대로 이뤄진 것이다(28, 36, 37).  

성취를 확인한 그분은 외마디 탄성을 내뱉는다. 

이루었다.”(30) 

인생을 넘어 영원의 시간이 단어에 압축되었다. 

이루었다. 오랜 소망과 염원이 이루어졌다. 

 

숨을 거두는 장면엔 그의 미소가 보인다. 

사명을 완수한 , 소명을 성취한 자에게 보이는 가녀린 미소.

 

영원부터 이어온 이야기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이는 압축된 이루었다 안식일에 몰두하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31). 현실의 몰두가 가져 비참함이다.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행태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거룩함을 잃어버린 자들의 최후다. 영원의 이야기를 망각한 자들의 비애다. 오랜 소망으로 영원의 비전을 마음 속에 품은 사람들만이 그래도 어렴풋이 압축된 이루었다 알아차릴 있다. 요한은 비밀을 알아차렸다. 예수님의 가녀린 미소도 간파했다. 

 

누구에게나 날이 있다. 

인생의 소명을 다하는 , 사명을 마치는 . 

나에게 날은 언제인가? 

숨이 다하는 , 나도 예수님처럼 이루었다 있을까. 

나의 사명이 완수되었다고 안도의 숨을 있을까. 

날을 위해 오늘 달려 있을까. 

새삼 다시 묻는다. 

 

우리 공동체에게 날은 언제인가? 

사명과 소명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 

변화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공동체의 사명을 다하면 이루었다하고 해체하면 된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우주와 역사에 거대하게 존재한다. 

우리 공동체도 작은 역사와 공간에 점으로 남으면 그만이다. 

이루었다 두려워하지 말자. 

기독 공동체의 폐쇄는 소멸이 아니라 회생이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 되어 아름다운 은하수가 된다. 

얼마나 밝게 빛날지는 공동체가 최선을 다해 사명을 다했는지에 달렸다. 

 

오늘, 고난주간의 성금요일. 

예수님의 가상만상에 빠져있기를, 영원의 이야기에 이어져 있기를 바래본다. 

또한 나의 사명, 공동체의 사명을 다시 복기해 보길 소망한다. 

고통과 수치 속에서 왕이 되신 그분을 되새긴다. 

 

덧붙임, 예수님은 숨이 넘어가시기 전에 이미 승리를 확인하신 하다. 오랜 전투의 끝은 육체의 숨이 끊어지는 바로 찰나의 순간이기 보다는 십자가에 달려 고통의 숨을 내쉬며 무수한 시간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탄은 이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부터 거다. 

 

——

예수님, 

십자가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생각과 정서와 마음을 묵상합니다. 

영원부터 이어져 당신의 이야기에 저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의 사명과 소명을 다시 각인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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