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2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2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3 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5 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하여,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NASB

knowing, brothers and sisters,beloved by God, His choice of you;(4절)

 

주석

4절 ‘택하심’(4절)은 유대인들이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적용하는 용어였다. 여기서 바울은 그 말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을 포함하는 교회에 사용한다(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감사의 고백으로 편지를 시작합니다(2절).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이며 보인 믿음과 사랑과 소망 때문입니다(3절).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으로 택하셨습니다(4절). 또한 바울 일행은 복음을 말뿐만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습니다(5절).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전한 복음은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는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열매 뒤에는 하나님과 복음전도자의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뿌린 대로 거두는 농부의 일과 같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

1. 감사의 이유

새로운 편지다. 

고린도교회와는 다른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내는 편지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바울의 권면이다. 

기대가 된다.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어떤 주제와 강도와 뉘앙스로 말씀을 하실지 기대가 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바울의 기도 가운데는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그 교회 성도들은 믿음, 사랑, 소망이 조화를 이룬다. 

믿음에는 행위가 따랐고, 사랑에는 수고가 더해졌다. 

소망은 인내를 낳았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한 바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넘친다. 

 

믿음과 행위가 같이 붙어 있다는 것은 신약의 핵심 주제가 통합되었다는 뜻이다. 

믿음과 행위는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자연히 그분의 뜻에 따르는 행위가 이어진다. 

단순히 인식, 지식으로서의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그토록 강조했던 부분이다. 

바울도 믿음과 행위를 언제나 통합해서 강조했다. 

 

사랑은 어떠한가? 

사랑은 수고로 이어진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수고하지 않으면, 그건 말로만 하는 사랑이요, 단순한 감정적 표현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랑은 상대에 대한 민감한 상황 파악과 섬세한 돌봄으로 이어진다. 

수고가 없이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요 속임수다. 

 

소망은 어떠한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당연히 인내를 낳는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원하는 시간에 완성된다. 

따라서 그 때를 기다리는 행위가 뒤따른다. 

 

믿음, 사랑, 소망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무언가라면, 행위, 수고, 인내는 몸을 통해 외부로 표출되는 행동이다. 

내면의 작용과 외부로의 행동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것인 신앙인의 자세다. 

이 신앙인의 자세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바울로 하여금 감사를 드리게 한 것이다. 

 

나와 주변의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기를 소망하게 된다. 

내면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어떻게 그것이 이뤄질까? 

 

2. 능력, 성령, 큰 확신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전한 복음은 말로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강연을 통한 복음 설명이 아니었다. 

바울이 가르친 복음에는 능력이 함께 했다. 

그 능력은 성령님으로부터 나온 능력이며, 따라서 다른 철학이나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수준의 확신을 넘어선다. 

성령님은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신다.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게 하신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능력이다. 

사람의 마음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음을 닫아 놓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말을 거는 것 자체다 곤욕이다. 

하지만, 성령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연다. 

그 능력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 그것은 변화된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큰 확신으로 다가간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으며, 사람들은 그 나라로 몰려 들고 있다. 

 

바울과 그의 선교팀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다. 

전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 

새로운 율법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 

이집트에서 당연히 생각하던 것이 바뀌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도 그와 같다. 

새롭게 바뀐 규정과 질서 속으로 몰려간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통치과 다스림을 기대하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러니 바울은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으니, 더욱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부활절을 지나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숨, 곧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다. 

그분이 사람을 바꾸시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그분이 사람들을 이끄시고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만드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 

회심의 경험이 없으면, 주되심의 경험이 부족하면 능력, 성령, 큰 확신은 사실 거리가 멀다. 

말로 하는 것 말고, 지식으로 전달하는 것 말고, 성령님의 변화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 사역자의 필수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과연 나는 이런 능력, 성령, 큰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숱한 이론들의 경쟁에서 실제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는가? 

누군가의 이론이나 누군가의 욕구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는 가고 있는가? 

많은 논의와 결정의 끝에는 과연 예수님이 있는가? 

 

[오늘의 기도]

몸소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보여주신 주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그 일을 보여주신 주님, 

제가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주님을 향하고 주님과 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많은 선배들의 믿음의 행위요 사랑의 수고요 소망의 인내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저는 그분들의 뒤를 따라갔을 뿐입니다. 

 

주님, 저에게 주어진 분량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믿음에 행위를 더하소서. 

말만이 아니라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하게 하소서. 

사랑에 수고를 더하소서. 

사랑한다 말만 아니라 그 사랑이 실증이 되도록 수고하게 하소서. 

소망에 인내를 더하소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고 고백이 끝까지 이어지게 인내하게 하소서. 

 

오늘은 말과 신경과 마음을 참 많이 썼습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주님께 나아가도록 도와주세요. 

누구도 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완전히 공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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