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21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 그 뒤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하셨습니다."

2 그러나 바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주가 누구인데, 나더러 그의 말을 듣고서,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주를 알지도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도 않겠다."

3 그들이 말하였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을 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무서운 질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 것입니다."

4 이집트의 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들어라. 너희는 어찌하여 백성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느냐? 어서 물러가서, 너희가 할 일이나 하여라."

5 바로가 말을 이었다. "그들이 이집트 땅의 백성보다도 더 불어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들이 하는 일을 중단시키려 드는구나."

6 바로는 그 날로, 이스라엘 백성을 부리는 강제노동 감독관들과 작업반장들에게 명령하였다.

7 "너희는 벽돌을 만드는 데 쓰는 짚을 더 이상 이전처럼 저 백성에게 대주지 말아라. 그들이 직접 가서 짚을 모아 오게 하여라.

8 그러나 벽돌 생산량은 이전과 같게 하여라. 만들어 내는 벽돌의 수가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게을러서, 그들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하면서 떠든다.

9 그들에게는 더 힘겨운 일을 시키고, 그 일만 하게 하여서,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여라."

 

주석

그 주가 누구인데(2절) 바로는 모세와 아론, 특히 하나님을 향해 철저한 모욕을 드러냈다. ‘여호와가 누군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여호와’를 아는 주제가 이후의 장들에서 빈번하게 되풀이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IVP 성경주석).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주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지만, 바로는 그 ‘주’가 누구냐고 모욕하며 비꼽니다(1-2절). 모세는 바로의 거절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지만 쫓겨나고 맙니다(3-4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전보다 더 강도 높은 노역을 시키도록 명령합니다(6-9절).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무능함 사이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넘어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고 바로에게 당당하게 나아갔지만, 강력한 반대를 마주합니다.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다가 강한 반대에 직면한 적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내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파라오는 역시 왕이었다. 

왠만한 말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 신이라고 여기고 있다. 

수 많은 신들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신이 자신들의 노예를 데려간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신이 신전을 짓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데려간단 말인가? 

납득하기 어렵다. 

안그래도 인구가 늘어 산아제한 정책을 펴기도 하고, 노동 강도를 높여 가며 통제하고 있는데, 

그들이 광야에 나아가 몇십만명이 집회를 가지면, 그동안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성토 대회를 가지면, 

그 위력과 위협이 얼마나 클 것인가? 

파라오 입장에서는 결코 허락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모세와 아론이 뭐기에… 

모세는 왕궁에 있었던 히브리 사람이지만, 과거에 살인을 저질러 광야로 도망친 작자 아닌가? 

아무런 권세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와서 몇십만명의 노동자들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니, 이건 미쳤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파라오 입장에서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 두 사람을 없애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집트의 왕은 역시 파라오였다. 

 

파라오는 묻는다. 

도대체 그 주가 누구냐고. 

도대체 히브리 백성을 끌고 나오라고 말하는 신이 누구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신의 명령을 들을 리 만무하다. 

도리어 더 강력한 노동명령을 내린다. 

노동강도를 더 높여서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도록 강경책을 구사한다. 

모세와 아론의 말들이 파라오의 화를 돋구었다. 

 

상황은 더 악화일로다. 

자칫하면 파라오의 근위병에게 잡힐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소식을 접하면 모세와 아론에게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박해고 고난이다. 

상황을 타개할 만한 일들이 보이지 않는다. 

며칠 동안 모세와 아론이 겪었을 고통이 눈에 들어온다.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가족들은 챙길 여력이 없다. 

상황을 통제하기 어렵다. 

겨우 몸을 일으켜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대로 진행하려고 해도, 모든 일이 다 수월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꼬이고, 사람들의 마음도 묶인다. 

꿈과 비전을 말하고, 미래의 소망을 말해도 꿈쩍도 안한다. 

도리어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고, 인신공격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왜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어렵고 힘든 길을 제시하는지 묻는다. 

마음이 떠나고 몸도 떠난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하나됨이 무너진다. 

갈등과 긴장이 증폭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진다. 

한 팀이 되어야 할 사람들끼리 와해되고 분열되어 산산히 흩어진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도 왜곡되고 저 운악산 꼭대기에 버려진다. 

 

그런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계속 말할 수 있는가? 

과연 하나님의 뜻이란 것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혹시 잘못된 것이라고 회의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헬륨 풍선처럼 북녘으로 사라진다. 

 

절망의 순간, 실패의 순간, 비통의 순간, 원망의 순간. 

우리 인간이 겪는 삶의 많은 부분이 이런 순간들이다. 

기대가 낭패가 되고, 소망이 원망이 되며, 비전이 허상이 된다. 

포기하고 싶어진다. 

원래도 그렇게 예상했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예상했었고, 그 중에 하나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 원망의 마음이 돌아간다. 

왜 나를 부르셨나? 왜 나를 이곳으로 이끄셨나? 

모든 것이 그분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날이 있다. 

그런 일주일이 있다. 

그저 그럴 때는 그냥 있어야 한다. 

그분이 일하시길 멍하니 쳐다본다. 

하늘이 조율해 주시길…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길… 

기도의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흩어졌던 꿈들이 다시 모이기를 바라며 운악산 정상을 쳐다본다. 

 

 

오늘 본문에서 도출할 수 있는 사실과 적용이다. 

 

1. 세상은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 파라오는 일의 관점에서만 히브리 백성들을 대한다. 

- 모세와 아론에게도 너희가 할 일이나 하라고 말한다. 

- 노동강도를 더 높여서 다른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 원래도 그랬지만, 당시에는 안식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 

-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 예배드리는 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려고 한다. 

- 공동체적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한다. 

 

3. 한 번의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마라. 

- 파라오에게 한 번 협상해서 실패했다고 그것이 실패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 원래 큰 일일수록 오랜 걸리는 법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라. 남북의 통일은 아직도 달성되지 못했다. 

- 실패로 여길 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으로 전환하라. 

 

구정이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세상의 효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관점에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자. 

그리고 실패의 순간에도 절망하지 말고 다시 그분의 일하심을 기대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새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 명절을 통해 새해를 다시 시작하게 하시고, 

새로운 다짐들을 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세상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지 않게 하시고, 

예배드려야 살 수 있는 예배자의 관점으로 보게 하소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을 때,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처량한지 알게 하소서. 

주님, 세상의 변화가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임을 알게 하소서. 

그 올바른 관계에서 올바른 변화가 일어남을 믿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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