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31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3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내게다 끌어대면서, ‘우리가 들은 대로 당신이 가버나움에서 했다는 모든 일을, 여기 당신의 고향에서도 해보시오’ 하고 말하려고 한다.” 24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26 하나님이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고침을 받았다.” 

28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모두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의 동네가 산 위에 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주석

고향(23절) 예수님은 그 동네 사람을 전부 알았고, 그들도 그분을 알았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지하신다. 그들은 속담으로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뭐든 구경거리가 될 만한 기적을 일으켜 보라고 요구한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사렙다 마을의 과부와 나아만(26-27절)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한 과부를 도와주라고 명령하셨다. 하지만 그 과부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엘리사는 군인인 어느 나병 환자를 치료했다. 그런데 그는 적군의 사령관이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사단의 속임수에 속고 있었다. 

예수님을 밀쳐서 죽이려고 했다. 

아무리 예수님이 저런 말을 했다고 해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것은 예상할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가족도 잘 안다. 

20-30년을 예수 가족의 이웃이 되어 그들의 삶을 봤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돌변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다. 

누가는 그들이 화가 잔뜩 났다고 했다. 

화가 났다고 한들, 예수님이 그들의 가족 중 누구라도 다치게 했는가? 아니며 죽이기라도 했는가? 

왜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까? 

그들은 예수님의 설교에 기본적으로는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22절이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고 말하였다.”

그렇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족을 알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설교에 기본적으로는 감탄과 놀라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돌변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들고 있다. 

예수님이 그들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1) 그들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말만 하지 말고 이적을 베풀 것’을 마음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2) 엘리야 시대 기근 가운데, 시돈의 사렙다 마을 과부에게만 은혜를 베푼 사실을 언급 

3) 엘리사 시대 시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을 고쳤다는 사실 언급 

4) 이런 사실들은 예언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였다. 

이런 말들을 고려할 때, 예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에 버금가는 분이시고, 자신들은 예언자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된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화가 났다면 아마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자신들의 신앙과 삶에 대해 통렬하게 지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십자가 사건에서는 죽음을 피하지 않은 것 뿐이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벼랑 끝까지 예수님을 몰고 갔다. 

거기까지 몰려 가신 것도 신기한데,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들을 뚫고 나가신다. 

한가운데를 지나가시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막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어쩌면 이 장면에서 이적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에게는 십자가를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 

사람들의 손에서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음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해결해야 했던 문제다. 

인간들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야 했다. 

사단의 결계를 망가뜨려야 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그걸 가능케 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나사렛 마을 사람들은 사단에 의한 집단 체면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한 두 명의 분노가 마을 사람 전체를 휘감싼다. 

군중 심리가 그래서 무섭다. 

사람 죽이는 것도 겁내지 않는다. 

광야에서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신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다. 

사단의 두려움이 보인다. 

예수님을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사단의 결기가 느껴진다. 

예수님의 처음 행실만 봐도 사단에게는 위협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말은 곧바로 사단의 실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단을 이기신 예수님, 사단의 결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구원의 소식을 알리고, 참 자유의 삶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돕고 싶다. 

 

 

[오늘의 기도]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할 때의 주님의 기분이 어떠셨을지 상상해봅니다. 

특히 그들이 예수님을 밀쳐 죽이려고 할 때,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단의 격분케하는 공작에 넘어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마을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그 배후의 공작 세력을 멸하리라 다짐하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 당신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님, 당신 덕분에 사단의 권세에서 헤매고, 허덕이던 사람들이 구출되었습니다. 

저주로 인해 죽기까지 수고만 하고 제대로된 열매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복음을, 당신의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게 힘이 남아 있는 한, 오직 주님의 구출 작전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전국수와 복음밥 캠프를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