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23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2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3 내가 증언합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4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5 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먼저 자신들을 주님께 바치고, 우리에게 바쳤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디도에게 청하기를, 그가 이미 시작한 대로 이 은혜로운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완수하라고 하였습니다.

7 여러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뛰어납니다. 곧 믿음에서, 말솜씨에서, 지식에서, 열성에서, 우리와 여러분 사이의 사랑에서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로운 활동에서도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NIV

For I testify that they gave as much as they were able, and even beyond their ability. Entirely on their own, they urgently pleaded with us for the privilege of sharing in this service to the Lord's people(3-4절).

 

주석

7절 고린도는 당시 헬라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로, ‘언제나 위대하고 부유한 곳’이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중산층의 교양 있는 도시 거주자였다. 몇몇 교인들은 사회 경제적으로 아가야 사회의 상류층 인사였다. 그중엔 상당수의 가난한 교인들과 종들도 있었다(BST 고린도후서). 

 

바울은 하나님이 마케도니아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전합니다(1절). 그들은 큰 환난과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구제에 힘썼습니다(2-3절). 그들에게 구제는 의무가 아닌 특권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4-5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 은혜의 특권에 동참하도록 도전합니다(6-7절).

 

마케도니아 교회는 힘든 중에도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기 위해 바울에게 간청합니다. 마케도니아 교회가 구제를 특권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먼저 자신들을 주님께 바쳤기 때문입니다. 구제의 능력은 부의 크기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주님께 드린 자가 이웃에게도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마케도니아 교회는 큰 환란과 시련을 겪었다. 

일반적으로 큰 환란과 시련을 겪게 되면, 육체적, 정신적, 재정적 위기를 경험한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하고,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하다. 

환란과 시련 속에서 재정도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케도니아 교회는 기쁨이 넘쳐났다. 

재정을 나누는 일에도 열심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의 역사가 이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환란과 시련, 그럼에도 마케도니아 교회는 영적인 기쁨을 원천으로 삼아 정서적 기쁨을 유지하고 있었다. 

환란과 시련, 그럼에도 마케도니아 교회는 자신들의 물질과 재원을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기를 즐겨하고 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가 힘에 지나도록 구제에 힘썼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교회는 구제가 특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구제를 특권으로 인식하는 정도의 관점은 도대체 어디서 생긴걸까? 

구제를 의무나 정서적 공감 정도의 관점은 쉽게 나올 수 있다. 

 

의무는 정부나 기관에서 부여하는 구제의 경우에 발생한다.  

공동체가 해야 한다고 구성원들에게 강조할 때 일어나는 관점이다. 

의무로 보면, 이런 반응이 쉽게 나온다. “음, 왜 내가 해야지?” 

정서적 공감은 좋은 관점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으로 받아들여 구제에 참여한다.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이 이런 관점을 지닌다. 

그런데 특권이라는 관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정체성을 바탕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갖는 관점일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향기, 편지, 대사… 

바울이 묘사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사람, 이런 사람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특별한 권리, 특별한 직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특별한 혜택으로 여긴다. 

정체성의 변화가 전체를 돌보겠다는 의지를 낳고, 그 신분과 의지가 결합하여 사랑의 실천을 특권으로 인식한다. 

그렇다. 구제가 특권이 되는 기쁨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의지와 열정이 가득한 자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특권이 된다. 

 

과연 나는 구제를 특권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후원도 하고 선교 헌금도 하지만 특권으로 인식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후원할 돈이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선물이며 특권일 것이다. 

후원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는 것도 선물이며 특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이는 돈을 후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쁨으로 감당할 일이다. 

 

디도가 고린도교회에 갔던 목적이 오늘 본문에서 밝혀진다. 

디도는 부유한 사람들이 많았던 고린도교회에 가서 후원금, 구제금을 모으려고 갔다. 

그런데 참 감사했던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디도를 환영하고 환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디도는 그 환영과 환대를 바울에게 보고한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바울은 위로, 기쁨, 신뢰를 경험한다(7장).

구제 헌금을 요청하러 갔던 디도를 통해 고린도교회와 바울 간의 관계가 회복된다. 

성도들은 회개했고, 바울은 회복을 선포했다. 

그리도 오늘 본문에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칭찬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믿음, 말솜씨, 지식, 열성, 그리고 사랑… 

이 모든 일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탁월한 측면이 있었다. 

그동안 어찌보면 바울은 성도들의 죄와 부족함을 지적하고 회개를 권면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성도들이 보여준 믿음과 열정과 사랑을 칭찬하고 있다. 

참 결말이 해피엔딩이다. 

 

회개를 요청했고, 성도들은 진심으로 회답했다. 

구제금을 요청했고, 성도들은 진정으로 회답했다. 

마음과 물질이 함께 움직이다. 

마음이 변화되니, 돈의 쓰임도 바뀐다. 

이것은 자연스런 과정이다. 

말만 변화되는 것은 사실 믿기 어렵다. 

삶의 구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진정한 변화의 시험대에 놓여있다. 

부유한 도시에서 사는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면 그 부유함의 일부를 구제금으로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마음의 회심과 돈의 용처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 

그게 그렇게 기계적으로 움직일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상당한 연결성이 있다. 

마음이 바뀌면 돈의 용처가 바뀌기 마련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돈과 시간과 에너지가 흐르기 마련이다. 

 

과연 나와 공동체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와 그 가치를 위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돈이 흐르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만물의 주님, 

모든 물질의 주님, 

주님이 주신 모든 자원과 물질과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이루고 싶습니다. 

저를 통로로 만들어 주옵소서. 

깨끗한 통로가 되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 위해 사람과 재정과 은혜가 흘러가도록 도와주세요. 

 

5년짜리 대통령이 역사를 왜곡하고 민족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을 참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 중, 정의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심판하시며 다스리스는 분임을 압니다. 

역사를 왜곡하면 결국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받게 됩니다. 

대통령 주변의 우상숭배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고통받고 피해받은 사람들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일제의 강제 노역 피해자 분들을 위로해주시고, 더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인도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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