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18일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46 제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다.47 예수께서 그들 마음 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48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5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The Message

“Whoever accepts this child as if the child were me, accepts me,” he said. “And whoever accepts me, accepts the One who sent me. You become great by accepting, not asserting. Your spirit, not your size, makes the difference.”(48절)

 

[오늘의 묵상]

 

1. 누가 가장 큰 사람 

이 말씀을 처음 읽을 떄, 제자들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논쟁거리가 되는가?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를 가지고 논쟁을 한다는 것, 말다툼을 한다는 것이 너무 웃기다. 

왜 이런 논쟁이 지금 이 순간에 발생했을까? 

 

하나는 예수님이 촉발한 측면이 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들어갔다. 

변화산에도 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가셨다. 

모든 제자들을 다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제자들이 여러모로 신경쓰고 있었던 것 같다. 

 

둘은 시기적으로 예민한 순간이 왔다. 

예수님이 자꾸 죽겠다는 말을 한다. 

사람들 손에 넘겨진다는 말도 한다. 

원래 리더가 부재할 경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차기 리더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셋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고 예수님이 왕으로 영광스럽게 등극할 것이란 정치적 기대도 함께 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 손에 자기가 넘겨진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제자들이 생각할 때는 그 모든 것은 과정이고, 

결국은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정치적 왕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제자들 사이에서 수석 제자를 미리 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 다음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사람이 누군지 마음 속으로 정했다. 

누구는 베드로, 누구는 요한, 누구는 야고보다. 

서로 논쟁이 벌어진다. 

여기서도 벌써 파벌이 형성된다. 

베드로의 열성과 행동 능력을 높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척이기도 하다. 

 

다른 본문에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청탁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그들 사이에 상당한 정치적 입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여하튼, 웃기다. 재밌다. 

예수님의 본의와는 상관없이 벌써부터 누가 예수님 다음인지 논쟁하는 것이 웃기다. 

 

예수님의 해법은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라는 역설적 대답이다. 

키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서열 정리를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조폭이 아니다. 

서열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가장 영향력 없는 아이를 환영하고 환대하고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 운동의 핵심 가치다. 

그룹 내의 서열을 정하고 영향력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라, 

영향력이 미미한 한 영혼이라도 살리는 일에 힘쓰는 작업이 예수 운동의 핵심에 있다. 

예수님은 언제나 쉽게 답하지 않는다. 

질문자의 질문 그 자체보다 그 질문이 나오게 된 환경과 맥락의 허점을 짚으신다. 

제자들은 잘 못 짚었다. 

논쟁할 주제는 누가 큰가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작은 자, 가난한 자, 약자를 영접하고 환영하고 환대할 것인가이다. 

 

예수님의 공동체가 논쟁할 주제는 무엇인가? 

누가 다음 리더십을 잡느냐도 때로 필요하다. 

우리는 현실에 뿌리내린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과 토론 주제는 어떻게 하면 주변의 연약한 친구들과 이웃들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환대할까이다. 

그것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2. 요한의 질문 

요한은 중요한 리더십 중에 한 명이었다. 

그는 아마도 위의 누가 크냐 논쟁에서 한 쪽 축을 차지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은근히 자랑한다.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일을 못하게 막았다. 

말은 우리가 막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요한이 주도적으로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상당히 상식적이고 맞는 말이다. 

우리 조직을 따르지 않는데, 우리 조직의 이름을 팔아 장사를 하는 사람을 가만히 두는 게 이상하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평판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요한이 맞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식의 조직 논리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사역에 대해 조직적 사고를 넘어선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지, 제자 조직의 포함 여부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한 조직에게 부과된 운동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대표주자가 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그저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졌는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잘 실현되는가의 문제다. 

어떤 조직을 따르는가, 어떤 사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쉽게 잊고 살아가는 문제다. 

소속되어 있으면 마치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일진회 넘버 쓰리의 생각을 가진 채 살아간다. 

소속으로 퉁 칠 수 없다.

제자들은 귀신을 내좇지 못했지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올 귀신을 내쫓았다. 

소속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구심력이다. 

본질에 대한 구심력이 있어야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이끌 수가 있다. 

 

오늘 이 순간 다시 한 번 본질에 대한 구심력을 발휘해본다. 

회의 시간, 쉬는 시간, 교제하는 모든 시간에 본질에 대한 구심력을 발휘해본다. 

은혜를 구하며. 

 

 

[오늘의 기도]

조직의 논리가 아닌 본질의 논리를 가져오시는 예수님, 

사람들의 상식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언제나 더 깊은 것을 추구하시는 예수님, 

이것이 때로 불편하지만, 분명 깊이 생각할 문제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예수님, 

제가 가진 생각의 문제를 드러내 주세요.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그 본질에 더 집중하게 하소서. 

본질에 대한 구심력이 더욱 강하게 작동하게 하소서. 

주님의 생각에 더 가까워지길 원합니다. 

조직적 사고가 아니라 본질적 사고에 천착하게 하소서. 

한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본질에 대한 추구 가운데서도 

현실의 문제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 생각의 균형을 잡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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