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19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18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이제 떠나야겠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친족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를 알아 보아야겠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편안히 가라고 하면서 작별을 하였다.

19 주님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집트로 돌아가거라. 너의 목숨을 노리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20 그래서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 등에 태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다. 그 때에 모세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2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이적을 행할 능력을 주었으니, 너는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바로의 앞에서 그 모든 이적을 나타내 보여라. 그러나 나는 그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내 백성을 놓아 보내지 않게 하겠다.

22 너는 바로에게 말하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23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

 

 

주석

바로의 고집(강퍅케 됨)(20-23절) 이 부분은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되는 것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이다. 그것은 다음에 나오는 열 장(여러가지 재앙이 내리는 동안 그리고 바다를 건널 때까지)에 걸쳐서 스무 번 언급되는 주제다. 서너 개의 다른 동사들이 사용되며, 때로는 바로가 그 자신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때로는 야웨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다. 강퍅케 된다는 단어의 의미는 인내, 완고함, 끈질김, 굽히지 않는 성질 등을 나타내는 이집트의 표현들과 유사하다(IVP 성경배경주석).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와 그의 가족은 미디안을 떠나 이집트로 갑니다. 엄청난 도전이 기다리는 여정이지만, 모세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18-20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준 능력을 바로 앞에서 나타내 보이라고 명령하십니다. 바로에게 전할 메시지도 친히 알려 주십니다(21-23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안전한 곳을 떠나 위험한 곳으로 가는 도전과 모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세와 임재의 상징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야 할 나의 이집트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구하며 나아갑시다. 

 

[오늘의 묵상]

가족들을 설득해야 한다. 

자신만의 부르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의 결정은 가족 모두의 삶에 영향을 준다. 

모세야 어찌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고향을 떠나 낯설고 위험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세의 아내와 아들들이 느꼈을 무서움과 두려움을 쉽게 재단할 수 없다. 

단순한 이민이 아니었다. 거대한 왕국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맞서서 그에게 경고하고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솔직히 말하면, 가족들은 놔두고 모세 혼자 가야 하는 게 맞다. 

괜실히 잘못하면 가족들 모두 몰살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고대 왕국에서는 크게 작은 싸움과 전쟁들은 늘 있어왔다. 

미디안에 살면서 그런 일을 한 두번 경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주변 종족 끼리의 싸움이 없었을리 만무하다. 

그 중에서도 그 지역의 패권은 이집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집트에 대항하는 민족이나 종족은 싸그리 멸망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무서운 나라에 들어간다. 왕에게 맞서기 위해 들어간다. 

장인 어른이 평안을 빌며 내 보내준 것도 대단해 보인다.

자신의 딸과 손자들을 사지에 보내는 것과 같다. 

떨기나무에 불에서 나온 소리를 들었다는 황당한 사위의 말에 이렇게 쉽게 허락을 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장인 그 스스로도 제사장이라서 그런가? 

모세 그 자신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가족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그 순간에 온갖 생각이 몰려온다. 

과연 이 일을 내가 혹은 우리 가족이 떠 안을 일인가?

나는 과연 충분히 설득되었나? 

나는 과연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기는 한 건가? 

 

IMAX로 아바타를 보았다. 

미친 CG와 3D 그래픽이 환상적이었다. 

물에서의 움직임도 그렇고, 인간과 나비족간의 화면상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생동감이 넘친다. 

계속되는 메시지 중 하나는 가족을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투지와 약속이다. 

이는 보편적인 메세지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전세계에 걸쳐 가족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헌신에 대해 말해왔다. 

모두가 동의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세는 과연 그 일을 잘하고 있나? 

 

모세가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팡이였다. 

이적과 기적을 만들어낸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방이가 된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기억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기억하지 않는 한, 

그 약속이 단지 환상이 아니고, 꿈에서 본 것이 아니고, 

지극히 현실 속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임을 계속 상기시키지 않는 한, 

그의 마음을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나귀나 낙타를 타고 가면서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지팡이였다. 

하나님의 능력과 이적과 약속이 담긴 지팡이였다. 

 

모세에게 지팡이가 있다면, 우리에겐 십자가가 있다. 

우리에겐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 그리고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경험하는 것, 

예수님의 성품을 더욱 깊이 인식하는 것, 

예수님의 약속을 더욱 깊이 신뢰하는 것, 

이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가족들이 위험에 놓이고, 동족들이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당시 최고 권력자와의 대립에서 승리할 것 같지도 않은, 인생 최고의 도전 앞에 놓인 모세가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의 지팡이라면, 앞날의 진로가 무엇일지 모르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디까지인지도 확실치 않고, 인생의 마지막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내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다시 말씀을 꺼내본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분께 마음의 초점을 맞춘다. 

 

 

 

 

[오늘의 기도]

주님, 부족한 사람을 통해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한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 연약함과 부족함을 온전히 인정합니다. 

그것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이 이뤄지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이 나타나길 기도합니다. 

당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나타나게 하소서.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등장하게 하소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온전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곳곳에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의 일하심을 믿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가길 원합니다. 

주님, 저와 우리 공동체를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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