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1. 9. 24. 

장소: 세인트루이스 한인 장로교회 대학부
 

0. 들어가며 

인사: 자기 이름의 뜻 소개하기 

예수: Jesus라는 이름은 원래 Jehoshua에서 왔는데, 뜻은 Je가 하나님, Hoshua는 구원하신다 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1. 예수님의 세가지 주장들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세가지 핵심적인 주장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 내가 곧 메시야다. 

의사로써 정확성을 추구하였던 누가는 예수님의 초기 행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4:17-21 “예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의 책을 건네 받으시고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곳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내게 내리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다. 포로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못 보는 자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려고 나를 보내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책을 덮으시고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 주셨습니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예수님께로 쏠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사이에 이루어졌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구원자 즉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이라는 곳에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성경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매번 예배때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구약 성경에 많은 곳에서 메시야가 나중에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메시야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올랐습니다. 그런 책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사야서라는 책입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사람이었기에 회당에 자주 가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특별히 회당장의 권유로 성경을 읽고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성경을 받으신 예수님은 이사야서 61장을 찾아서 읽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성령이 내게 내리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다. 포로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못 보는 자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려고 나를 보내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라고 하셨다.’


이 글은 회당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들을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빨리 자신들을 구원해주시기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전 세계를 다스릴 위대한 왕이 세워지기를 항상 바래왔습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성경 낭독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소망과 기대에 대한 설명을 해주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큰 충격으로 뒤바뀝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읽던 예수님이 돌연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사이에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이 예언의 말씀은 내가 읽는 도중에 현실로 이루어졌다.’ 즉 내가 바로 여러분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그 구원자 메시야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회당안에 있던 청중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뭐 이런 개뼈따귀 같은 소리가 다 있어,” “아니 이 사람 거의 똘아이 아니야,” “자기가 메시야래 ㅋㅋ 이거 한번 볼만하겠군” 등등.  아주 당황스럽고 웃긴 이야기로 여겼을 겁니다.


3. 내가 곧 하나님이다. 

당황스럽고 놀라운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해서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던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 John의 기록을 한 번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 주위에 모여들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를 애태우게 할 작정입니까?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라면 우리에게 터놓고 그렇다고 말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전에 말하였으나, 너희는 믿지 않았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양들을 내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더 큰 분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내 양들을 빼앗을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복음 10:24-30)


유대인의 명절 중 하나인 하누카에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는 명절을 맞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마당을 거닐고 계실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하시는 여러가지 행적,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고, 약하고 천대받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높여주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여러가지 기적들을 행하시는 것을 보니 메시야같은 면모가 있은 것 같은데, 이자리를 빌어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죠. 당신이 정말 메시야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가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는 사람이랍니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죠. 그분이 내게 맡기신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이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아버지와 내가 바로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두번째 주장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과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위대하게 생각했는지, 성경을 손으로 배껴쓸때,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들고 있던 펜을 놔두고 샤워실에 가서 몸을 씻고 그 단어를 옮겨적었다고 합니다. 그런 위대하신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이 하나라는 주장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꼭지가 돌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다시금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에게서 온 선한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너희는 도대체 이 중에서 어떤 일 때문에 나에게 돌을 던지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행한 선한 일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한 말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데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소!” (요한복음 10:31-33) 


유대인들도 예수님의 선행은 인정했습니다. 약자를 사랑하고 병자을 고치는 예수님의 선행은 인정했지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그 모욕적인 주장에는 돌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즉 메시야로는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으로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비밀 하나를 알려드릴까요? 사실은 제가 바로 하나님의 영입니다. 제 이름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혁수… 영어 약자로는 혁의 H, 수의 S 즉 HS 다시 말씀 드리면 HOLY SPIRIT.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입니다. 저를 따르십시오. 


만약 제가 이렇게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요? ‘뭐야 이거 이단 아니야! 거짓말도 뭐 저런 거짓말을 하나?’ 혹은 ‘뭐 저런 미친 사람이 다 있어’…. 등등 저를 거짓말장이거나 미친 사람 취급하겠죠?


그렇습니다.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런데 자기가 우주의 창조자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럼 예수님은 도대체 거짓말장이란 말입니까? 혹은 미치광이란 말입니까? 이런 주장을 믿는 크리스찬들은 모두 속임수에 넘어간 무지몽매한 사람이거나 아님 다 광신도란 말입니까? 마지막으로 한가지 주장이 남아 있습니다. 


4. 나는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네명의 저자중에 세무서 공무원 출신으로 예수님의 제자였던 마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세면의 저자들과는 달리 유독 예수님의 마지막 주장을 네번이나 기록했습니다. 그럼 한 번 살펴 볼까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때, 열두 명의 제자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가시는 도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간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그들은 인자에게 사형죄를 씌울 것이다. 그들은 인자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 비웃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삼 일째 되는 날에 인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태복음 20:17-19)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은 뒤 삼일 만에 살아나겠다는 주장을 네번이나 하셨습니다. 만약에 이 주장이 실제가 되었다면 그분은 거짓말장이거나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진짜 메시야이며 진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인간의 특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 사건에 달려있습니다. 정말 그 부활 사건이 일어났다면 예수님의 그 담대한 주장들은 믿을 만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 사건은 그의 제자들이 조작한 것에 불과하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옆의 농구코트에 가서 농구나 한판 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저는 이자리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 사건은 수학공식처럼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을 만한 충분한 역사적, 고고학적, 사료적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가지 매우 중요한 증거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결국 모두 순교당하고 맙니다. 거짓말임을 뻔히 아는데 그 거짓을 위해 죽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또 하나는 1세기 교회의 폭발적인 증가입니다. 십자가의 형은 당시의 가장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는 그냥 십자가에서 죽은 죄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죄인을 믿는 종교가 그렇게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의 핍박과 유대인들의 압박 속에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죽은 그분이 다시 살아났다고 증거하는 증인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빈무덤, 주일 제정등등. 

극단적으로 말해서, 만약 여러분들 중에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으시다면 부활이 없었다는 역사적 증거를 확실히 제시하시면 됩니다. 


5. 나가며

저는 오늘 예수님의 세가지 핵심적인 주장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오늘 이자리에서 예수님을 여러분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드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한가지, 이제 대학생으로서 예수님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예수님 만큼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분은 없습니다. 역사와 문화 경제와 정치 그분의 영향이 안미치는 영역이 없습니다. 그런 분을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건 엄청난 행운입니다. 


대학생! 단순히 취업을 위한 취업준비생으로 여러분의 가치를 절하시키지 마십시오. 진리에 대한 여러분의 숨겨진 열정을 다시 꺼내드십시오. 저는 세인루이스 한인 장로교회가 여러분에게 좋은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편안하게 하지만 진지하게 예수님에 대해 배워보십시오.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직한 질문, 그리고 정직한 반응을 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비밀 하나 말씀드릴까요? 저는 정말로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분의 삶과 그분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 어메이징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분의 어룩 하나를 소개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언하시자 제자들이 엉뚱하게도 자기를 높은 자리에 앉혀달라고 부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있은 후 20년정도 지난 AD 50년경에 기록되었다는 마가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것처럼 이방 사람들의 통치자라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고관들도 사람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누구든지 너희중에서 높아지려거든 종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너희 중에서 첫째가 되려거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인자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제물로 주려고 왔다’ (마가복음 10:42-45). 



"애처로운 마음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고 부른다. 공격적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진 않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동물이 좁고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면서 ‘동물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 (cited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493723.html)

"Animal hoarding involves keeping higher than usual numbers of animals as domestic pets without having the ability to properly house or care for them, while at the same time denyingthis inability." (http://en.wikipedia.org/wiki/Animal_hoarder)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감당하려는 사역자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People hoarder, or person hoarder?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인격적 수준을 넘어서서 자신의 깜냥을 과신하여 혹은 약한 사람들에 대한 강박적 집착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역적 만용, 이것이 People hoarder 이다.

사람을 모으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둘레를 확장시켜라. 사람은 그 뒤에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PEOPLE HOARDER가 되지 말고 POEPLE LOVER가 되라.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음을 넓은 사역자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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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24일 오전 10시 그의 도착 또한 범상치 않았다. 종수는 Lambert 공항 터미널 2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이제까지 세인트루이스  Lambert 공항에 터미널 2가 있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사진 한 컷에 다 들어올 것 같은 Lambert 공항이 또 다른 터미널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지난 2년간 내가 몰랐다니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터미널 1 곳곳을 샅샅이 찾다가 결국 완전 다른 빌딩으로 향했다는 사실... 

오자마자 부쉬 스태디움에 가서 다저스와 카디널스와의 경기 관람... 이런!  3회에 6점을 주면서 패색이 그냥 흘러 내린다.
6회에 자리를 털었다. 그대로 Arch로 향했다. 무려 섭시 37도, 강렬한 태양 아래서 강력한 바람조차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진을 많이 못찍었는데, 그점이 아쉽다. 너무 더워서 그리고 전날 잠을 많이 못자서 정신이 없었던 듯. 



저녁은 Seasons American Cuisine에서 미모의 자매(?)와 함께했다. 
그렇게 24일 종수의 세인트루이스 여행의 첫날이 지났다. 

남자다워졌다. 그리고 여성스럽다. 멋져진 모습의 종수. 반갑다. 

둘째날:Cahoika 에 갔다. 세인트루이스 동쪽 일리노이에 있는 인디언 집단 주거지.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된 황량한 넓은 벌판 그리고 mounds. Monk Mound에 올라가 서남쪽에 보이는 Arch를 바라보다. 제점수는요 6점... 나이아가라 폭포가 10점이니 6점도 나쁘지 않은 것.
Art Museum에 다시 갔다. 자주 오고 싶은 곳이다. 곧바로 그녀에게 종수를 양보하고 집으로 향하다. 

셋째날:
미시시피강을 따라 riverview drive을 달리다. 사실, 강을 볼 수 있는 구간은 매우 짧았다. 다들 불만 가득. 
하지만City Museum은 정말 대박이었다. 온갖 슬라이드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정글북... 하늘위에 가득한 구름다리. 두개의 경비행기 사이에 놓인 구름 다리를 건너는 즐거움. 오랜만에 고덕초등학교에 돌아간 기분. 그렇다. 누구말마따라 난 유치하다. 
종수도 덩달아 신나는 표정. 다행이다.
그렇게 그와의 여행은 막바지로 치닫고. 
그는 그녀와 영화를 보러가고.  난 홀로 앉아 다음학기를 구상한다. 


엄정순 선생님, 그녀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그녀는 15년전부터 미술 교수를 그만두고, "우리들의 눈" 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미술 수업을 돕고 그들의 창의적인 상상력을 개발시키는 데 주력한다. 

“이 친구들은 아무래도 사물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독특한 감각이 있어요. 장애를 장애로만 바라보면 한없이 무능하게 느껴지고 힘이 없지만, 다르게 보면 가장 좋은 재능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사실 ‘모든 창의성은 콤플렉스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이들의 독특한 감각이 얼마나 귀하게 느껴지는데요.” (From 레이디 경향,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4&artid=12071)
 

엄정순 선생님은 학생들을 장애인 혹은 아이들로 보지 않고 그들을 똑같은 인간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시각 (another seeing)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표현해내는 예술가들로 바라본다.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를 전 아시아로 펼치려는 계획, 시각 장애인들이 미술대학에서 공부하게 하고 싶은 계획등은 내가 가진 상상력의 밖을 보게 한다.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장애적 시각이 벗겨지는 것.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세상. 취업이 목적이 아닌 인간적인 삶 그 자체의 목적을 둔 사회와 대학. 이것이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닐까? 

http://www.youtube.com/watch?v=rxIjG-c3m5Y&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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