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2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17 여호야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주님과 왕과 백성 사이에 맺게 하고, 동시에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맺게 하였다.18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그 땅의 온 백성이 바알의 신전으로 몰려가서, 그 신전을 허물고, 제단을 뒤엎고, 신상들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또 그들은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그리고 여호야다 제사장은 주님의 성전에 경비병들을 세웠다.19 그리고 그는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들과 호위병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주님의 성전에서 데리고 나와서, 호위병들이 지키는 문을 지나, 왕궁으로 행진하여 들어갔다. 왕이 왕좌에 오르자,20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였다. 아달랴가 왕궁에서 칼에 맞아 살해된 뒤로, 도성은 평온을 되찾았다.21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 그는 일곱 살이었다.  

 

메시지 

여호야다는 하나님과 왕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왕과 백성 사이에도 따로 언약을 맺었다(17절).

 

[오늘의 묵상]

언약은 언제나 갱신되어야 한다. 

약속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점점 멀어진다. 

약속의 원래 취지도 잊는다. 

성문화시켜 놓는다해도 사문화가 되는 것이 법이요 약속이다. 

유다는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좇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다시 언약을 맺기를 원하신다. 

잊혀진 기억들을 소환하고, 원래의 정신으로 되돌아 간다. 

어찌보면, 언약은 공동체적으로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하며, 개인적으로도 정기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이스라엘이 다시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아달랴 여왕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다시 다윗의 왕가가 회복되기를 소망했다. 

7년을 기다렸고, 그 기다림 끝에 요아스를 왕위로 올린 것이다. 

유다 땅의 바알 신전을 허물고, 제단을 뒤엎고, 신상들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테이블을 뒤엎으셨다.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셨다.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이 말이 너무 멋지다. 

성전을 다른 말로 정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곳,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곳 등등. 

충분히 다른 말로 정의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성전의 의미를 이방인에게까지 확장하신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동물들을 사고 팔아야 하기에 동전을 바꾸거나 물건들을 교환하거나 동물들을 사는 행위가 이방인의 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을 그냥 놔 둘 수 없었다. 

본말전도, 주객전도다. 

꼬리가 머리를 흔든다. 

핵심은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경배하며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그런데 이방인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원천차단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니 예수님이 화를 내신 것이다. 

그분이 생각보다 힘이 좋으신 분이셨다.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전국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바알 신당은 곳곳에서 파괴되었다. 

바알의 제사장 맛단은 처형되었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정치개혁으로 이어졌다. 

요아스 왕이 새롭게 통치한다. 

사실 너무 어린 나이라서 그가 통치한다기보다는 여호야다의 도움을 받아 유다를 다스린다. 

그리고 여호야다는 여호와 신앙으로 똘똘 뭉쳐있다. 

왕이 왕좌에 오르자,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였다. 

다윗 왕가의 회복을 바라던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 기뻐했다. 

그전에는 아달랴의 폭거에 시달려 제대로 감정 표현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 뛰쳐나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새로운 왕을 기뻐했다.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이 갱신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과의 언약이 갱신되어야 한다. 

나는 그분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가? 

평생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했던 약속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는가?

2001년 여름 신입간사 시험을 보던 때가 기억난다. 

여전도회관 옥상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합격시켜주시면, 평생 주님을 위해 살겠다 말씀드렸다.  

 

지금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오늘도 다시 묻게 된다. 

 

[오늘의 기도]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지켜나가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언약을 지켜내라고 요청하시는 하나님, 

저는 당신과의 약속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더 많이 기억하고 싶습니다. 

더 많이 기록해 두고 싶습니다. 

정말 많은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평범함을 싫어했던 저로서는 아쉽기만 합니다. 

주님을 위해 특별한 헌신으로 섬기겠다는 약속을 제가 잘 못지키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 당신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오늘 하루를 살게 해 주세요. 

하루에 많은 것을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봅니다. 

겸손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날 그날 꼭 해야 할 일들을 하도록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2월 21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4 일곱째 해가 되자, 여호야다 제사장이 사람을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들을 주님의 성전에 있는 왕자에게로 데리고 가서, 그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또 주님의 성전에서 맹세를 하게 한 뒤에, 그들에게 왕자를 보여 주었다.5 그리고는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안식일 당번을 세 반으로 나누어, 삼분의 일은 왕궁을 지키고,6 다른 삼분의 일은 수르 성문을 지키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호위병들의 뒤에 있는 문을 지키십시오. 이와 같이 하여 왕궁을 철저히 지키게 하도록 하십시오.7 그리고 안식일 비번은 모두 두 반으로 나누어서, 임금님께서 계신 주님의 성전을 지키도록 하십시오.8 각자 무기를 들고 임금님을 호위할 것이며, 누구든지 대열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반드시 죽이고, 임금님께서 나가고 드실 때에는 반드시 경호하도록 하십시오.”9 백부장들은 여호야다 제사장이 명령한 것을 그대로 다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 당번인 사람들과 안식일 비번인 사람들을 데리고 여호야다 제사장에게로 왔다.10 제사장이 백부장들에게 창과 방패를 나누어 주었다. 그것은 다윗 왕의 것으로서, 주님의 성전 안에 간직되어 있던 것들이다.11 그리하여 호위병들은 각각 손에 무기를 들고, 성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주위를 감시하며, 왕을 호위하였다.12 그런 다음에 여호야다 제사장이 왕세자를 데리고 나와서,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왕의 직무를 규정한 규례서를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니, 백성이 손뼉을 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13 아달랴가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주님의 성전에 모여 있는 백성에게 가서14 보니, 왕이 대관식 규례에 따라 기둥 곁에 서 있고, 관리들과 나팔수들도 왕을 모시고 서 있고, 나라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며 나팔을 불고 있었다. 아달랴가 분을 참지 못하고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이다!” 하고 외쳤다.15 그 때에 여호야다 제사장이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시오. 그리고 저 여자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칼로 쳐죽이시오.” 여호야다가, 주님의 성전에서는 그 여자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으므로,16 그들은 그 여자를 끌어내어, 군마가 드나드는 길을 통해 왕궁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그 여자를 처형하였다.

 

메시지 

그때 제사장이 왕자를 데리고 나와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하나님의 언약이 담긴 두루마리를 준 뒤에 그를 왕으로 세웠다. 그에게 기름을 붓자, 모두가 손뼉을 치며 “요아스 왕 만세!”를 외쳤다(12절).

 

주석

16절. 아달랴의 죽음은 매우 간결하게 언급될 뿐만 아니라 통치 기사를 나타내는 공식 문구 요약이 없다. 이는 저자가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아댤랴 여왕, 아합 왕가의 마지막 사람,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의 딸.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의 반란 때 죽게 되자, 자신이 여왕이 되어 다윗의 혈족 뿐 아니라 자신의 자손들도 깡그리 모두 죽인 여인. 

권력에 사람이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합 왕가의 사람이었기에, 그도 아합의 전통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윗의 혈족, 유다의 왕가를 전멸함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 무효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열왕기하 저자는 아달랴의 통치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문맥을 보면, 여호야다의 개혁 때, 바알의 신당을 파괴하고, 제단과 우상을 깨뜨리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아달랴 여왕은 바알 신앙을 온 유다에 전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아달랴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어린 왕자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하고 아달랴를 처형했다. 

다윗의 왕가는 계속 이어진다. 

바알 우상을 중심으로 사탄은 치밀한 계략을 세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약속이 파기되도록 상황을 조성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사람을 남겨두셨다. 

북이스라엘은 예후를 통해 개혁을 일으키고, 남유다는 여호사밧을 통해 다윗 왕가를 복원하고 종교 개혁을 일으키셨다. 

하나님의 개입과 열정으로 다윗 왕가를 존속하게 되었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른다. 

거짓말로 이간질한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분 안에 참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온갖 거짓말로 가린다. 

경제적 풍요를 약속하면서 바알 우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따르라고 유혹한다. 

처음에는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게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진다. 

바알 신앙을 왕가에 들여서는 안되었다. 

신앙의 순수함을 지켜냈어야 했다. 

혹 어쩔 수 없이 정략 결혼을 했더라도, 문화를 바꾸었어야 했다. 

바알의 문화를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신앙의 문화로 극복했어야 했다. 

 

세속 문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다. 

자칫하면 세속 문화에 젖어 그리스도 신앙을 잃어버릴까 두렵다. 

그 두려움이 너무 크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전도의 접촉점을 잃게 된다. 

세상과의 접촉점은 유지하면서, 신앙의 요체는 잃어버리지 않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주체적인 인간이자 신앙인으로 굳게 서야 하는 한다. 

친구들이나 대중문화에 흔들리지 않는 심리적, 신앙적, 정서적, 이성적 토대를 잘 쌓아야 한다. 

가짜 뉴스를 분별할 수 있는 눈과 이성, 심리적 불안정함을 파고드는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자존감, 신앙의 기초, 분별력 등이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 청년의 때에 이런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때로 자신 안에 자리 잡은 우상 숭배의 요소를 처형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 나도 모르게 중독되어 있는 상황을 이길 힘이 필요하다. 

내면의 종교개혁. 

이것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와 청년들에게 내면의 종교개혁을 일으킬 힘과 의지를 주소서. 

바알 신앙으로 상징되는 숱한 성공주의, 쾌락주의를 속으로부터 처형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임을 인정하게 하소서. 

일상의 무기력과 싸워서 이기게 하소서. 

성공에 대한 욕망과 권력에 대한 욕망에 의해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그런 것이 없더라도 활기차고 능동적으로 살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공급해 주소서. 

주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2월 16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8 예후는 백성을 다 모아 놓고 말하였다. “아합은 바알을 조금밖에 섬기지 않았지만, 이 예후는 그보다 더 열심으로 섬기겠습니다.19 그러니 이제 바알의 예언자들과 종들과 제사장들을 모두 나에게 불러다 주십시오. 바알에게 성대하게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빠지는 사람은 어느 누구든지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예후는 바알의 종들을 진멸하려고 이러한 계책을 꾸민 것이다.20 예후가 계속하여 말하였다. “바알을 섬길 거룩한 집회를 열도록 하시오.” 그러자 집회가 공포되었다.21 예후가 이스라엘 모든 곳에 사람을 보냈으므로, 바알의 종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왔다. 그들이 바알의 신전으로 들어가자, 바알의 신전은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가득 찼다.22 예후가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거기 모인 바알의 종들이 입을 예복을 모두 가져 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에게 입힐 예복을 가져 오니,23 예후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바알의 신전으로 들어가서, 바알의 종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여러분 가운데 주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여기에는 다만 바알의 종들만 있어야 합니다.”24 이렇게 하여 그들이 제사와 번제를 드리려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 예후는 밖에서 여든 명의 군인을 포진시켜 놓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준 사람을 하나라도 놓치는 사람은, 그가 대신 목숨을 잃을 것이다.”25 번제를 드리는 일이 끝나자, 예후는 호위병들과 시종무관들에게 말하였다. “들어가서 그들을 쳐라. 하나도 살아 나가지 못하게 하여라.” 그러자 호위병들과 시종무관들은 그들을 칼로 쳐서 바깥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바알 신전의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서,26 바알 신전의 우상들을 끌어내어 불태웠다.27 바알의 우상들을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바알의 신전을 헐어서 변소로 만들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오늘까지도 그대로 있다.28 이렇게 하여 예후는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로부터 쓸어 내었다.

 

주석

변소(27절). 신전은 전통적으로 원래 있던 자리에 재건축하는 것이 관례이다. 예후는 그곳을 변소로 만들어 다시는 신전 부지가 되지 못하게 하였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대대적인 종교 청산 작업에 들어갔다. 

예후와 여호나답의 마음 속엔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이스라엘은 회복되어야 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은 이스라엘에서 사라져야 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뜻이었다. 

 

전국에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들 모두를 불렀다. 

그냥 오라고 하면 당연히 오질 않을 것이었다. 

바알의 전파자였던 이세벨과 아합 왕가를 진멸한 사람이었다. 

예후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리가 없었다. 

예후는 거짓말로 선포했다. 

자신은 그 전보다 더 강력하게 바알을 따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겠다고도 했다. 

전국의 바알 숭배자들은 다 수도 사마리아로 오란다. 

처음에는 의아하고 의심했던 사람들이 예후의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에 조금씩 의심을 풀었다. 

전국의 바알 신앙자들을 다 처리하는 것도 불가능할테고, 도리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 국정을 운영할 계획을 품었을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두려워 떨었는데, 아주 고마운 말이었다. 

예후 왕조에도 바알 숭배자들이 살아갈 방법이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한 바알에게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한 자리에 모인 전국의 바알 숭배자들이 제사를 드리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고, 예후의 군사들이 밀고 들어왔다. 

혼비백산. 

어디로 갈 데가 없다. 

바알 신상이 있는 오직 바알의 대제사장만 출입할 수 있는 그곳에 몸을 숨긴다. 

그러나 병사들은 그 신상들도 끌어냈다. 

신상이 끌려 나오자 그 주변에 숨어 있는 자들은 더 숨을 데가 없다.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신상이 있던 자리는 변소로 만들어서 다시는 바알 신정이 세워지지 않도록 영구히 폐쇄했다. 

 

예후와 여호나답은 정결한 나라를 다시 세우고 싶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방식이 꼭 옳은지는 헷갈린다. 

사람들을 쉽게 잡아서 죽이려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모았다. 

이 방법인 가장 효과적이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속임수로 사람들을 죽였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흠이 있어 보인다. 

예후가 정권을 잡고 나서 여호와 신앙을 다시 표명하고, 회개할 사람에게 기회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영적으로보면, 나와 공동체 안에 있는 우상을 싸그리 제거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하다. 

하나님이 외에 다른 것으로 주인을 삼고 있다면, 제거해야 한다. 

완전히 제거한다는 목표를 삼고 철저하게 살펴봐야 한다. 

완벽할 수 없지만,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모습의 내면과 공동체의 모습이 되도록 나아가야 한다. 

영적인 존재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위 본문은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인종청소라는 사회적 재앙을 정당화하는 본문이 아니다. 

도리어 우상을 불러 들이는 마음의 욕망과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적극적이고 분명한 청산의 요청이다.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마고의 귀를 다시 붙여 주신 분이다. 

자신을 죽이는 로마의 병사들의 용서를 구한 분이다. 

그런 분이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 전쟁을 옹호한다고 믿는 것은 지극히 오판이며, 사탄의 꾀임에 빠진 어리석은 결정이다. 

예수님은 위의 본문을 분명 우리 안에 우상숭배의 정신과 욕망들을 철저히 배격해야 함을 말하는 본문으로 사용하셨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우상 숭배의 무서움을 알려주시는 하나님, 

당신의 가르침을 올곧이 받아들입니다. 

당신 외에 다른 것으로 신을 삼지 않겠습니다. 

저의 주인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제 안에 우상들을 멸하시고, 주님께서 저의 왕좌에 좌정하여 주소서. 

저는 주님을 더욱 따르는 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이 있다면 주여 깨닫게 하시고, 제거할 힘과 용기를 주소서. 

 

오늘도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흘려보내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2월 15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12 그 다음에 예후가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벳에켓하로임에 이르렀다.13 예후는 거기에서 이미 살해된 유다의 아하시야 왕의 친족들을 만나, 그들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들로서, 이세벨 왕후와 왕자들과 왕의 친족들에게 문안을 드리러 내려왔습니다.”14 그러자 예후는 그들을 생포하라고 명령하였다. 부하들은 그들을 생포하여, 벳에켓의 한 구덩이에 넣어 죽였는데, 무려 마흔두 명이나 되는 사람을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

 

15 예후가 그 곳을 떠나서 가다가, 그를 만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났다. 예후가 그에게 안부를 물으며 말하였다. “내가 그대를 진심으로 믿듯이, 그대도 그러하오?” 그러자 여호나답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예후는, 그렇다면 손을 내밀라고 하였다. 그가 손을 내미니, 그를 수레에 올라오게 하였다.16 그런 다음에 예후가 말하였다. “나와 함께 가서, 주님을 향한 나의 열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도록 하시오.” 예후는 여호나답을 자기의 병거에 태워 나란히 앉았다.17 그리고 그는 사마리아에 이르러서, 거기에 남아 있는 아합의 지지자를 모두 죽였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NIV 

After he left there, he came upon Jehonadab son of Recab, who was on his way to meet him. Jehu greeted him and said, “Are you in accord with me, as I am with you?” “I am,” Jehonadab answered. “If so,” said Jehu, “give me your hand.” So he did, and Jehu helped him up into the chariot(15절).

 

주석

13절. 이스라엘의 여호람은 유다 아하시야의 외삼촌이었으므로, 아하시야의 친척들은 직간접적으로 아합 혈통과 관련이 되어 있다(IVP 성경배경주석).

레갑(15절). 레갑족은 다소 이름 없는 씨족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했으며 반유목민적 생활을 하였으며 렘 35장에서 다시 거론될 정도로 종교적 보수주의로 유명하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이런 본문을 대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아합 왕가에 대항한 혁명은 성공했고, 아합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조리 도륙을 당하고 만다. 

분명히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악의 씨앗을 제거하여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이키려는 하나님의 열심이 작동하고 있다. 

그 일에 예후와 여호나답이 사용되고 있다. 

누군가는 신의 이름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고 할 수도 있다. 

그의 비난이 이해가 된다. 

관대한 처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등장하는 현종은 참으로 관대한 왕이었다. 

전쟁에서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간 장군들을 용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무관들의 무력 시위에도 관대한 용서를 베푼다. 

가난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또한 특심이다. 

고려의 왕도 이러한데, 하나님께서 좀더 관대한 처분을 내리심이 좋지 않았을까! 

 

이 사안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아합 때문에 들어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재앙에 가까운 우상숭배 문화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상숭배는 결국 왕의 신격화로 연결되고, 왕권이 너무 강해져서 율법의 테두리를 뛰어넘었다. 

왕 마음대로 땅을 빼앗고 노동력을 징발하고 전쟁을 치른다. 

더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혹은 유다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통해 이루시고자 했던 계획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는 지경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나마 이렇게 예언자들을 통해 회개의 메세지를 던지시지만 왕들은 듣지 않았다. 

이세벨은 우상숭배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그의 딸은 남유다 왕가에 며느리가 되어 그도 곧 여왕이 될 상황이었다. 

바알 신앙이 여호와 신앙을 대체할 수도 있는 상황. 

싹을 자르지 않으면 이스라엘/유다의 정체성은 다 날아갈 지경. 

쏜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엘리사, 예후, 여호사밧! 

이들이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과거에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의 우상숭배자들과 싸웠듯이, 지금 엘리사, 예후,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유다 내부의 우상숭배자들과 싸워야 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시는지 의아해 한다. 

민족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신으로 하나님을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을 잘 보면, 가나안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기준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출애굽 광야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에 대해 하나님은 엄중하게 문책하시고 징벌하셨다. 

가나안 정복과 거의 맞먹는 재앙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내린다. 

아이성 전투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남북 왕조(북이스라엘, 남유다)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치리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무조건 자기 편이라고 편애하는 분이 아니시다. 

당신의 구원 계획에 따라 적극적으로 심판을 행하는 순간이 있으셨다. 

초기 이스라엘의 정체성 확립 시기에 더욱 활발하게 개입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이 파괴되는 순간에도 활발하게 개입하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 열심이셨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반역자들을 심판하시고 치리하신다. 

 

예수님으로 다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왠만한 반역으로는 꺾을 수 없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이다. 

사탄이 거짓말로 사람을 동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궁극적으로 사탄을 무찔렀다. 

사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짓말로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것이다. 

두려움을 심어주어,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전략을 잡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게 만들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게 만든다. 

하나님 나라를 굳건히 세워져서 계속 자라고 있다. 

이것이 놀라운 비밀이다. 

 

그러기에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예수님과 성령님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라를 절대적으로 위협하여 망가뜨릴 세력이 없다. 

그 나라는 예수님이 왕이시며 성령님이 돕고 계신다. 

저주와 심판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 사람들을 이끄신다. 

아무리 벌을 내려도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바뀌려면 장발장의 은혜 경험이 필요하다. 

그 은혜 경험으로 인생 전체가 뒤바뀐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은혜를 베푸신다. 

죄인들을 사랑하신다.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계속 확장되고 굳건해진다.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 만들어져 있다. 

예수님은 왕이시고, 성령님은 우리가 왕께 순복하도록 도우신다. 

 

[오늘의 기도]

당신의 나라를 지금도 강력하게 이끄시는 하나님, 

당신의 나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원합니다. 

심판이 아니라 은혜와 자비로 지금도 인내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계속 보고 계시는 하나님, 

당신의 인내와 사랑이 수 많은 사람들을 샬롬의 세계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 영광을 보고 싶습니다. 

그 나라를 보고 싶습니다. 

매일 매일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날 그날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압니다. 

세계 곳곳에서 당신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욕심많은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전쟁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교만하고 욕심많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가난하고 약하여 곧 쓰러질 것 같은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하옵소서. 

교만한 사람들은 자멸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주님께 의지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겸손히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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