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6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헛된 말로 속아넘어가지 마십시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과 짝하지 마십시오.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

10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여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12 그들이 몰래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13 빛이 폭로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14 드러나는 것은 다 빛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1. 빛의 자녀답게

5장 1절에서는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살라고 권면했던 바울이 8절에서는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받는 자녀는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다. 

빛을 경험한 사람은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의 빛을 경험하기 전 사람들은 어둠에 갇혀 있었으며, 어둠과 매 한가지였다. 

무엇이 진실인지, 참인지, 선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전쟁과 살생과 쾌락이 주를 이루었다. 

사회는 주인과 노예로 나누어졌으며, 그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살해와 억압이 기본 값이었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둠에 묻히고 그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예수님의 빛이 세상에 비추었으니,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그 빛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스스로 빛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빛의 자녀들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다. 

빛은 거짓을 폭로하고, 진실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을 건다. 

빛은 하나님의 기준을 모두에게 드러낸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준다. 

이것이 빛이다. 

빛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헛된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사탄의 속임수, 사람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하나님의 기준,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 선함과 의와 진실을 끝까지 따라간다. 

 

2. 빛의 폭로

어둠의 일들이 환히 드러난다. 

빛은 어둠을 폭로한다. 

죄악은 켜켜이 숨겨져 있다. 

한꺼풀을 벗긴다고 다 드러나지 않는다. 

죄악은 구조적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지속적인 폭로가 필요하다. 

빛은 계속해서 켜켜이 쌓인 구조적 죄의 꺼풀들을 발가벗긴다. 

육체의 욕망을 몰래 숨어서 계략을 짜고,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다. 

경쟁자의 죽음으로 부와 영광을 차지하려고 한다. 

몰래 숨어서 저지르는 죄악을 빛은 폭로한다. 

그들의 숨은 의도와 거짓을 폭로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한다. 

죄인들은 부끄러움과 수치에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랑받는 자녀들은 빛의 자녀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빛으로 살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빛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랑이 곧 빛이다. 

삼위 하나님은 사랑으로 연합해계시기 때문에 그 자체로 빛을 발산하신다. 

사랑의 연합이 곧 빛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죄, 한국 교회의 구조적인 죄, 그리고 우리 가정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죄. 

그 죄의 구조를 폭로하고, 드러내고, 도려내어 선, 의, 진리를 선포하자. 

교회 세습은 욕망이 작동하는 구조다. 

힘들고 어려운 자리, 누구도 마다하는 자리에 희생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누가 세습이라 하겠는가? 

미자립 개척교회의 세습을 누가 반대하겠는가? 

중대형 교회들이 세습을 시도하니 반대하는 것이다. 

특히 대형 교회들의 세습은 그 욕망의 구조가 참으로 지저분하고 더럽다. 

세상 기업과 다르지 않다면, 교회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작고 미약한 교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정들이 더는 나와서는 안되겠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오늘도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더 깊이 누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그 사랑 때문에 빛으로 환히 빛나게 하소서. 

성격이 밝고 쾌활해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져서 나오는 빛이 있습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을 비추게 하소서. 

빛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제가 속한 공동체에 그런 빛을 비추게 하소서. 

서로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멈추고 사랑으로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희생의 마음으로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5월 02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3 음행이나 온갖 더러운 행위나 탐욕은 그 이름조차도 여러분의 입에 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에게 합당합니다.

4 더러운 말과 어리석은 말과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

5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음행하는 자나 행실이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 숭배자여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몫이 없습니다.

 

 

주석

3-5절. 이 부분은 신자들 가운데서 발견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한 진술이다. 성적 부도덕과 음란, 탐욕은 용인될 수 없는 행동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죄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즐기는 방편이 된다면, 이런 것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 마치 예수님이 욕정에 물든 생각 자체가 그런 생각을 부도덕한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동일한 죄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다(마 5:27-30). 이런 범죄는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자격을 누리는 것과 양립할 수 없다(참고. 고전 5:9-11)(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바울이 제시하는 윤리 덕목의 근저에는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이 놓여 있다. 

구원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윤리적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애 윤리적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윤리적 행동이 뒤따른다. 

1, 2절이 그 부분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래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주셨다. 

이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으로 살아가게 된다. 

받은 사랑 떄문에 존재가 변하고, 존재가 바뀌니 삶의 윤리와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 윤리를 만들어낸다. 

의지나 결심이나 성공이나 목표달성 때문에 윤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공공선을 위해,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윤리적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인간의 악한 습성을 전제할 때, 이런 윤리적 논의는 합리적이고 합당하다. 

그러나 그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사랑받는 자녀라는 깊은 자각과 감사가 기초다. 

그 사랑이 다른 윤리적 덕목과 행동 양식을 낳는다. 

 

2. 우상숭배자 OUT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신은 성령님이 제공하신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닮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밝혔듯이 육체의 욕망과 육체의 행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방해한다. 

성적 부도덕과 음란, 탐욕은 성령님의 인도를 거부하게 된다. 

성령님의 인도를 거부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다. 

사랑받는 자녀의 개념은 가정에서 확립된다. 

가정에서 자신이 사랑받는 자녀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 개념에 대해 빠르게 이해한다. 

그리고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도와주었던 것을 하나님께도 투사한다. 

가정에서의 경험이 그래서 중요하다. 

온전한 용납의 경험이 필요하고, 그것의 최종적인 완전한 형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온다는 것을 경험할 때, 비로소 육체의 욕망을 이길 힘을 얻는다. 

육체의 욕망의 근저에는 온전한 용납(사랑)에 대한 욕망이 놓여 있다. 

이것이 충족될 때, 심리적으로 과도한 육체의 욕망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근본적 욕망과 필요를 채우신다. 

 

바울은 음행이나 행실이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숭배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조각품을 만들어 절을 하는 사람만이 우상숭배자가 아니다. 

로마 시대 곳곳에서 행해지던 수많은 음행이나 더러운 행실, 그리고 탐식을 비롯한 부에 대한 욕심들 모두 우상숭배의 한 형태란다. 

구약 시대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던 그 죄악이 신약에서도 여전히 만연되어 있었다. 

성도들은 그 죄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시작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에 기반하여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삭개오가 좋은 본이다. 

 

 

[오늘의 기도]

깨끗한 삶, 정결한 삶을 원하시는 예수님, 

오늘도 수많은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서 정결한 삶을 살도록 이끄소서. 

죄악을 즐기지 않게 하시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우소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면서 이겨내길 원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죄악의 생각들이 점점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하소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분의 삶을 인도하소서. 

주께서 기적으로 역사하소서. 

주님의 일하심을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5월 01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5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27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28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십시오.

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주석

30절. 옛 생활 방식을 따르면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고 말하는데(사 63:10), 이는 성령이 단순히 신적 은사나 힘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로 조금씩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수적 증거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을 도우라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 지켜야할 윤리와 도덕을 말하고 있다. 

정직함, 분노 절제, 근면함, 덕을 세우는 말, 친절함, 용서… 

좋은 도덕적 특성들을 말하고 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런 덕들을 키울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도둑질이 아니라,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의 목적은 개인의 자본 축적일 것이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린다. 

시간의 자유, 소비의 자유, 사람 활용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다보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자신도 모르게 도둑질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돈이 돈을 낳는 세상, 기초 자본금이 있어야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세상… 

그렇게 끝 모를 자본증식의 꿈을 꾼다. 

 

바울은 근면하게 일하는 것을 장려한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돈을 빼앗는 거라면 반대다. 

삭개오는 합법과 불법을 오가며 다른 사람들의 돈을 가져갔다. 

그가 회심하자 그의 돈가방이 회심하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 궁핍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었다. 

떳떳하게 벌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미덕이다. 

 

바울은 영적인 일, 종교적인 일만 말하지 않는다. 

영의 구원만 다루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 

세상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부자와 빈자로 나뉜다. 

매일 마주하는 것이 이 현실이다. 

 

2.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마라

그리스도인의 모든 미덕은 성령님으로부터 나온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성품을 닯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분은 점진적으로 우리의 변화를 도모한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미덕은 성령님의 내적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 의지적 결단, 지속적인 훈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예수님을 닮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격이신 성령님께서 천천히 우리의 내면에 영향을 주고 존재를 빚어가신다. 

처음부터 모든 미덕을 소유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예수님의 성품에 온전히 도달할 수는 없다. 

우리의 육체의 욕망이 완전히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구원과 삶에 절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분이 슬프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거부 혹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의 뜻은, 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됨을 해치는 것이 바로 용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다. 

자신의 부족함도 인정하고, 상대방의 부족함도 용납하는 것, 이것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의 행태다. 

 

너무 슬픈 소식을 들었다. 

지인의 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달리면서 그를 위해 계속 기도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그를 위해 기도한다. 

주님의 기적을 바랄 뿐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 

당신을 슬프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의 뜻에 더 예민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에 좀더 가까워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용납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에게 주님의 기적을 보여주시길 기도합니다. 

인간의 방법은 더는 작동하질 않습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 그의 육체에 일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4월 29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 주님, 악인에게서 나를 건져 주시고,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2 그들은 속으로 악을 계획하고, 날마다 전쟁을 준비하러 모입니다.

3 뱀처럼 날카롭게 혀를 벼린 그들은,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을 품고 있습니다. (셀라)

4 주님, 악인에게서 나를 지켜 주시고,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나를 밀어서 넘어뜨리려 합니다.

5 오만한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고 몰래 덫과 올가미를 놓고, 길목에는 그물을 치고, 나를 빠뜨리려고 함정을 팠습니다. (셀라)

6 그러나 나는 주님께 아뢰기를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나의 애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7 내 구원의 힘이신 주 하나님, 전쟁을 하는 날에 주님께서 내 머리에 투구를 씌워 보호해 주셨습니다.

 

NIV

Rescue me, O LORD, from evil men; protect me from men of violence(1절),

 

Keep me, O LORD, from the hands of the wicked; protect me from men of violence who plan to trip my feet(4절).

 

 

[오늘의 묵상]

1. 포악한 자

세상에는 포악한 자들이 있다. 

전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 사람 죽이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자. 

폭력을 휘두르고 전쟁을 준비한다. 

이들이 정말 악독한 이유는, 단순히 폭력을 행사하기만 해서가 아니다. 

이들은 육체적 힘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다. 

전쟁을 계획하고, 전쟁을 도모하고, 전쟁을 획책한다. 

뱀의 혀를 가졌다. 

독사의 독을 품고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미움과 분노가 쌓이며, 전쟁의 명분이 늘어난다. 

이런 사람들이 악인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전쟁을 활용한다. 

사람들은 아둔하게도 전쟁을 획책하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 

전쟁광에게 통치권이 넘어가면 세상이 시끄럽고 세상이 고통을 받는다. 

이들은 교묘하게 함정을 파고, 언론 플레이를 하며, 전쟁의 정당성을 선전한다. 

자신들이 먼저 침략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작은 충돌을 침소봉대하여 보도한다. 

군중들은 지도자의 궤략에 빠져 전쟁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전쟁은 두려운 일이다.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다. 

포악한 자를 피해야 하며, 그들이 결코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깨어있는 합리적이고 선량한 시민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2. 애원

시인은 하나님께 애원하고 있다. 

포악한 자들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도 포악해지는 것이다. 

포악한 사람들보다 더 포악해지면 상대방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다른 하나는 지혜롭게 피하는 것이다. 

포악한 자와 폭력으로 맞서면 당하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다. 

지혜롭게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시인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바로 하나님께 애원하는 것이다. 

힘도 부족하고 지혜도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애원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계속 붙들어야 한다. 

주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한다. 

주님께서 적들의 모든 궤계를 궤멸시켜주시길 기도한다. 

주님께 무릎을 꿇고 도우심을 바란다. 

악인들에게 둘러쌓여 있다고 느낀다면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한다. 

 

 

[오늘의 기도]

나의 보호자가 되시는 주님, 

이 세상은 악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전쟁광들이 있습니다. 

전쟁하기를 즐겨합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저 방치합니다. 

주님, 선량한 사람들, 약자들을 보호하소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살펴주소서. 

 

제 주변에는 악인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쟁 같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매일 돈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을 맞닥뜨리는 주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소서. 

주께 도움을 구하는 성도들을 구원하소서. 

청년들의 삶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그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새로운 소망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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