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14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1 아합의 아들 일흔 명이 사마리아에 살고 있었다. 예후가 편지를 써서 사본을 만들어,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르엘의 관리들과 원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냈다.2 “너희는 너희가 섬기는 상전의 아들들을 데리고 있다. 병거와 말과 요새화된 성읍과 무기도 가지고 있다. 이제 이 편지가 너희에게 가거든,3 너희는 너희 상전의 아들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고 적합한 인물을 찾아서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앉히고, 너희는 너희가 섬기는 상전의 가문을 편들어서 싸우도록 하여라.”4 이에 사마리아의 지도급 인사들은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저 두 왕도 그를 당하지 못하였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와 맞설 수 있겠소?”5 그리하여 왕가를 지키는 사람들과 성읍을 다스리는 사람들과 장로들과 왕자들을 보호하는 사람들이, 예후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우리는 장군의 신하입니다. 장군께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그대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왕도 세우지 않겠습니다. 장군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하십시오.”6 예후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두 번째 편지를 써서 보냈다.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명령을 따르겠다면, 너희 군주의 아들들의 목을 베어서, 내일 이맘때까지, 이스르엘에 있는 나에게로 가져 오너라.” 그 때에 왕자들 일흔 명은 그들을 키워 준 그 성읍의 지도자들과 함께 있었다.7 편지가 성읍의 지도자들에게 전달되자, 그들은 그 왕자들을 잡아서 일흔 명을 모두 죽인 다음에,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서, 이스르엘에 있는 예후에게 보냈다.

8 전령이 와서 예후에게, 그들이 왕자들의 머리를 가져 왔다고 알리니, 예후가 말하였다. “그 머리들을 두 무더기로 나누어, 아침까지 성읍 어귀에 두어라.”

 

9 아침이 되었을 때에, 예후는 나가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옛 주인에게 역모를 꾀하여, 그를 죽였습니다. 백성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이 모든 사람은 누가 죽였습니까?10 백성 여러분은 아합의 가문을 두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 어느 것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종 엘리야를 시켜 하신 말씀을 모두 이루셨습니다.”11 그런 다음에 예후는,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을 모두 쳐죽였다. 또 아합 가문의 관리들과 친지들과 제사장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NIV 

Know then, that not a word the LORD has spoken against the house of Ahab will fail. The LORD has done what he promised through his servant Elijah(10절).

 

[오늘의 묵상]

아합 왕가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에 마음 편치는 않다. 

그야말로 왕가의 사람들을 멸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아합 왕가의 혈족 뿐 아니라 그 가문에 속한 사람들 모두를 진멸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반역한 사람들은 그래서 이스라엘을 죄악으로 이끌었던 사람들을 깡그리 멸하고 있다. 

가나안의 진멸 전쟁이 떠오른다. 

유사한 측면이 있다. 

더는 회심의 가능성이 없을 때, 그래서 죄악의 구조가 뿌리부터 놓였을 때,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 하나님은 그 뿌리를 뽑기로 결정하셨다. 

그냥 병으로 죽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람들을 일으켜서 대리 심판자로 삼으셨다. 

가나안에 대해서는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을 대리 심판자로 삼으셨다. 

그리고 아합에 대해서는 예후 장군을 대리 심판자로 삼으셨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는 아합의 자녀들이 70명이나 있었다. 

이들 모두 언제든지 아합 왕가를 일으킬 사람들이었다. 

예후는 사마리아의 관리들에게 왕을 다시 세우라고 알렸다. 

요람 왕과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죽었으니, 아합 왕가의 새로운 왕을 세우라는 말이었다. 

일종의 전쟁 선포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합 왕가로부터 새로운 왕을 새웠다면, 예후는 그들과 전젱을 했을 것이다. 

관리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최전방에서 싸우던 장군이었다. 

전방의 유능한 장군들이 모두 그의 편이었다. 

사마리아에도 군사가 없지는 않았으나 전투력이 그만 못했다. 

자칫하다가는 사마리아가 그 옛날 여리고성이나 아이성처럼 될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예후의 편에 서기로 결정하고, 아합의 자녀, 자손 70명을 죽인다. 

 

북이스라엘의 겨울 왕궁의 도시 이스르엘에서도 아합 가문에 속한 자들을 모두 죽인다. 

이렇게 예후의 반역은 완벽하게 성공하게 된다. 

예후는 이 반역을 하나님이 오래 전에 엘리야를 통해 예언했던 예언의 성취라고 보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자신이 수도 사마리아로 진격해서 아합 왕가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었는데, 그렇게하지 않아도 백성들의 관리자들을 통해 아합 왕가를 멸족시킬 수 있었다. 

그걸 예후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로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10 백성 여러분은 아합의 가문을 두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 어느 것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종 엘리야를 시켜 하신 말씀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심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연기되고 있다. 

그분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시는 날, 아주 공정하고 그리고 아주 은혜롭게 심판을 하실 것이다. 

공정하다하면, 사람의 행위와 그 동기와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하신다는 말이다. 

은혜롭다하면, 최종 판결에 있어서 예수님의 변호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을 반역하여 높이 쌓아 올린 인간의 교만을 하나님은 부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사람들, 하나님 나라를 이땅 가운데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 예수님을 닮기 위해 꾸준했던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잘했다고 칭찬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부와 명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과 안아주심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실 것이다. 

심판의 연기를 심판의 부재로 믿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자.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오늘도 노력을 기울이자. 

 

[오늘의 기도]

심판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말씀은 공중에 흩어지지 않고 천지에 남아 결국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때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심판의 근본적 동기는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을 온전한 사람으로 이끌기 원하시는 주님,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그 뿌리가 썩어갑니다. 

뿌리가 썩으면 결국 생명과 선의 역할은 사라지고, 죽음과 악의 구조를 확산시킵니다. 

하나님, 썩은 뿌리를 제거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옵소서. 

회복을 명하시고, 새로운 희망을 보게 하소서. 

 

저에게도 남아 있는 썩은 뿌리들을 제거하시고, 

생명과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사람으로 세워지도록 이끄소서. 

오늘 만나고, 보게 될 모든 것에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2월 13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27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이것을 보고 벳하간으로 가는 길로 도망하였으나, 예후가 그의 뒤를 추적하며 “저 자도 죽여라” 하고 외치니, 이블르암 부근 구르 오르막길에서 예후의 부하들이, 병거에 타고 있는 아하시야를 찔러 상처를 입혔다. 그는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그 곳에서 죽었다.28 그의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 실어 예루살렘으로 운반하고, 그를 ‘다윗 성’에 있는 그의 조상들의 묘지에 함께 장사지냈다.

29 아합의 아들 요람 왕 제 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렀을 때에,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아름답게 꾸미고는, 창문으로 내려다보았다.31 예후가 문 안으로 들어오자, 이세벨이 소리쳤다. “제 주인을 살해한 시므리 같은 자야, 그게 평화냐?”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문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내 편이 될 사람이 누구냐? 누가 내 편이냐?” 그러자 두세 명의 내관이 그를 내려다보았다.33 예후가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져라.” 그들이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지니, 피가 벽과 말에게까지 튀었다. 예후가 탄 말이 그 여자의 주검을 밟고 지나갔다.34 예후가 궁으로 들어가서, 먹고 마시다가 말하였다. “이제 저 저주받은 여자를 찾아다가 장사를 지내 주어라. 그래도 그 여자는 왕의 딸이었다.”35 그들이 그 여자를 장사지내 주려고 찾아 나섰으나, 그 여자의 해골과 손발밖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36 그들이 돌아와서 그에게 그렇게 보고하니, 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주님의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르엘의 밭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주검을 뜯어 먹을 것이며,37 이세벨의 주검은 이스르엘에 있는 밭의 거름처럼 될 것이므로, 이것을 보고 이세벨이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셨는데, 그대로 되었다.”

 

NIV 

Jezebel's body will be like refuse on the ground in the plot at Jezreel, so that no one will be able to say, ‘This is Jezebel.’”(37절)

 

주석

벳하간-구르/이블라암-므깃도(27절). 아하시야는 이스르엘에서 남쪽으로 간다. 이것은 유다로 가는 방향이지만 또한 그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북 왕국 수도 사마리아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IVP 성경배경주석).

30절. 이세벨의 단장은 이 세상을 품위 있게 떠나기를 원하는 행위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예후 장군이 아합 왕가에 반기를 들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요람은 죽었고, 이제 예후의 군대가 이스르엘로 말 고삐를 당겼다는 소문도 순식간이었다. 

왕의 겨울 별장에 머물던 이세벨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자신의 사위, 유다의 아하시야 왕도 죽었다는 소식이 돌았다. 

절망적이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위세등등했던 자신의 말은 더는 위력이 없었다.

곁에 있는 시종 정도만 자신의 말을 들었지, 대부분의 신하들은 이미 겁에 질려 도망했거나 예후 편에 서 버렸다. 

이대로 예후가 성에 도착하게 되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흘러간다. 

죽음을 앞에 두니, 화려했던 자신의 인생 뒤편의 후회와 회한이 몰려온다.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숱한 예언자들도 떠오른다. 

엘리야를 비롯하여 엘리사와 그의 예언자 학교에서 배출했던 수많은 예언자들이 자신의 정권과 우상 숭배와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던 기억이 소환된다. 

그들을 억압했고 대신 바알 제사장들을 적극 기용하고 중용했다. 

바알 제사장들이 곳곳에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해 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 반역이 현실화 된 상황에서 아무도 이세벨 편에 서지 않는다. 

모두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났다. 

이세벨은 외로움을 느꼈다.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만 남았다. 

그래도 왕가의 딸이며, 한 나라의 국모인데, 우아하고 고상하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위세등등했던 지난 날의 위엄을 놓고 볼 때, 최소한 죽음 앞에 초라해지고 싶지 않았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아름답게 올리고, 가장 좋은 옷을 입었다. 

치장하는 모든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매번 하던 일인데, 오늘따라 더디게 가다가 또 갑자기 시간이 빨리 간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한다. 

바알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예후가 도착했다. 

성안 왕궁 창문을 통해 익숙한 얼굴 예후를 내려다 본다. 

“이게 평화냐?” 

꾸짖듯, 가능한 위엄있게 소리쳐 본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왕비의 엄위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떨리는 음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남아 있던 시종들도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이다. 

 

예후가 말했다. 

“내 편이 될 사람이 누군가? 누가 내 편인가?”
쩌렁쩌렁 울리는 예후의 말 소리에 창문마다 손을 들고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묵숨이라도 부지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저 여자를 창밖으로 내던져라”

예후의 명령에 이세벨의 내관과 시종들이 달려든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당당하게 죽고 싶었는데, 내관과 시종들의 호위를 받으며, 반역자의 칼에 당당하게 목을 내밀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소리치며 발악해보지만, 이미 몸은 반쯤 떠올랐다. 

그리고 허우적거리는 순간, 몸은 내동댕이 쳐졌고, 두개골과 내장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타락시킨 권력자의 죽음이었다. 

누구 칼에도 피를 묻히지 않고 그저 추락하여 죽게 되었다. 

말이 그의 시신을 밟고 지나갔다. 

 

예후는 그의 군대와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서열 정리를 마친다. 

반역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처리한다. 

죽이든지, 감옥에 넣든지… 

그리고 잔치를 연다.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 

신하들은 새로운 왕을 칭송했다. 

술과 고기를 먹고 있는 와중에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가 생각났다. 

최소한 장례라도 치러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미 그의 시체가 뿔뿔이 흩어졌다. 

아름다웠던 외형은 다 사라지고 두개골과 몇개의 뼈만 남았다. 

개들이 와서 먹어치웠던 것이다. 

이로써 예언자 엘리야의 말이 현실이 되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온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죄로 이끌었던 권력자의 최후는 이렇게 허망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 했다. 

아름다운 꽃도 10여일이면 시들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신군부는 1979년 서울의 봄을 짖밟았다.

탱크와 모반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80년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시민들을 학살하는 잔악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이제 역사는 기억한다. 

그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어리석고 고통스러운가! 

성공한 쿠테타는 혁명이란다. 

혁명의 결과가 시민들의 학살이라면 그것은 정당한 혁명이 아니라 권력욕에 사로잡힌 엘리트들의 반역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은 시민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었어야 했다. 

자신들의 세상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역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의 만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그러니 권력을 가진 사람,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악마적 욕망을 버리고, 겸손히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자. 

상황을 통제하고 주도권을 가지려는 목적을 잘 살피자.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나의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것인가? 

조심스럽게 겸손하게 내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겸손하게 섬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섬김을 실천하시는 예수님, 

하늘의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사람들을 섬기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당신의 섬김을 끝까지 따르도록 이끄소서. 

작은 권한이라도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사용하게 해 주소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하게 하소서. 

겸손하길 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다시 하루를 시작합니다. 

연휴 후에 찾아오는 무력감으로부터 건져주시고, 

다시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시작하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2월 10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4 그리하여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는, 요람을 칠 모의를 하게 되었다. 그 때에 요람은 이스라엘 전군을 이끌고, 시리아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의 라못을 지키고 있었다.15 요람 왕이 시리아 왕 하사엘과 싸울 때, 시리아 사람에게 다친 상처를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와 있을 때였다. 마침내 예후가 말하였다. “장군들이 나와 뜻을 같이 한다면, 아무도 이 성읍을 빠져 나가서, 이스르엘에 이 사실을 알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16 그런 다음에 예후는,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다. 요람이 그 곳에서 병으로 누워 있었다.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요람을 문병하려고 벌써 거기에 와 있었다.

 

17 이스르엘의 망대 위에 서 있는 파수병이, 예후의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웬 군대가 오고 있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자 요람이 말하였다. “기마병을 보내어 그들을 만나,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아라.”18 그리하여 기마병은 그들을 만나러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라 하셨소.”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평화의 소식인지 아닌지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 파수병이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들에게 간 전령이 돌아오지 않습니다.”19 그리하여 왕이 두 번째 기마병을 보내자, 그가 그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라 하셨소.”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평화의 소식인지 아닌지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20 파수병이 왕에게 또 보고하였다. “그들에게 간 전령이 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친 듯이 말을 모는 모습이, 님시의 아들 예후와 비슷합니다.”21 이 말을 듣자, 요람은 “병거를 준비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병거를 준비하니,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자기의 병거를 타고 예후를 만나러 나가서,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땅에서 그를 만났다.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예후 장군, 평화의 소식이오?” 하고 물었다. 예후는 “당신의 어머니 이세벨이 저지른 음행과 마술 행위가 극에 달하였는데, 무슨 평화가 있겠소?” 하고 대답하였다.23 요람이 그의 손에 쥔 말고삐를 급히 돌려 도망하면서, 아하시야에게 소리쳤다. “아하시야 임금님, 반역이오.”24 예후가 힘껏 활을 당겨 요람의 등을 겨누어 쏘자, 화살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나갔다. 그는 병거 바닥에 엎드러졌다.

 

25 예후가 요람의 빗갈 시종무관에게 말하였다. “그 주검을 들고 가서,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시오. 당신은, 나와 당신이 그의 아버지 아합의 뒤에서 나란히 병거를 타고 다닐 때에, 주님께서 그를 두고 선포하신 말씀을 그대로 기억할 것이오.26 주님께서 아합에게 ‘내가 어제,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함께 흘린 피를 분명히 보았다. 바로 이 밭에서 내가 너에게 그대로 갚겠다. 이것은 나 주의 말이다’ 하고 말씀하셨소. 이제 당신은 그 주검을 들고 가서, 주님의 말씀대로 그 밭에 던지시오.”

 

NIV 

Jehu said to Bidkar, his chariot officer, “Pick him up and throw him on the field that belonged to Naboth the Jezreelite. Remember how you and I were riding together in chariots behind Ahab his father when the LORD made this prophecy about him(25절).

 

주석

이스르엘(14절). 길르앗 라못에서 이스르엘까지는 약 72킬로미터이다. 이스르엘은 아합이 세운 겨울 수도이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 예후의 반역

칼을 뺏으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장군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 

예후는 장군들에게 입단속을 시킨다. 

절대로 외부에 흘러 나가서는 안된다. 

요람 왕은 전투 중에 다쳐 왕의 휴양지인 이스르엘 궁에서 치료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군사를 일으켜 이스르엘로 진격한다. 

이스르엘 망대에 서 있던 파수병이 이상한 군대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왕에게 보고 한다. 

왕은 기마병을 보내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어한다. 

그런데 기마병은 예후와의 만남 이후에 돌아오질 않는다. 

두 번에 걸친 기마병의 투입에도 함흥차사다.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요람 왕과 문명와 있었던 남유다 아하시야 왕이 함께 병거에 오른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자신의 군대 장관 예후가 아닌가? 

그런데 좀 이상했다. 

길르앗 라못을 지켜야 하는 예후가 왜 여기로 오고 있는가? 

만약 올 거라면 미리 전령을 보내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던 터라 덜컥 두려움이 엄습했다. 

요람이 묻는다. 

“예후 장군, 평화의 소식인가요? 아님 나쁜 소식인가요?”

예후의 대답은 피를 솟구치게 한다. 

“당신의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마술 행위가 극에 달했는데, 무슨 평화가 있겠단 말이오!!”

청천병력같은 소리다. 

갑자기 어머니 이야기는 무엇이며, 그 말뽄새는 무엇인가! 

이건 반역이었다.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예후 장군을 당할 수가 없다. 

그는 전쟁에 잔뼈가 굵은 전사였다. 

 

요람 왕은 예후가 쏜 화살에 가슴이 뚫려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시체는 과거 아합과 이세벨이 강제적으로 빼앗았던 나봇의 포도원에 던져진다. 

이 모든 조치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예후의 순종의 결과다.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죄를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북이스라엘에 바알 우상을 들여오더니, 수많은 이방신을 음란하게 섬겼다. 

자신들만 섬긴 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우상 숭배 하도록 법과 정책과 문화를 만들었다. 

게다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던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 탈취 하더니만 나봇과 그의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지만, 아합 왕가는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다. 

 

예후는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이름이 비슷하지만,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예후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냈다. 

예후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들이 구약에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한 가지다. 

오직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심판을 뒤덮는 사랑을 보여주셔야 했다. 

심판만으로는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잠시 돌아오는 듯 싶지만, 결국 다시 떠난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는지를 증명해 보이셔야만 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일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 이후로 하나님은 심판의 대행자로 사람을 쓰시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인내하시기로 결정하셨다. 

예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점점 확장되고 있다. 

결국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가 오게 되면, 그 때에는 분명한 심판이 기다린다. 

예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대의 반역이든, 전쟁이든 하나님 운운하면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기만이다. 

민주주의적 양심과 소양으로 지도자를 비판하고 참여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그분은 평화를 원하 시고 평화를 위한 중재자의 출현을 원하신다. 

2024년 02월 09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 예언자 엘리사가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허리를 단단히 묶고, 손에 이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가거라.2 거기에 가면, 그 곳에서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안에 들어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그를 불러내어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거라.3 그리고 기름병을 기울여 그의 머리에 부으며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하고 말하여라. 그렇게 말한 다음에 너는 문을 열고 속히 도망하여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4 그리하여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가 길르앗의 라못으로 갔다.5 그가 도착하였을 때에, 그 곳에는 군대의 장군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까?” 그 시종이 말하였다. “바로 장군님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6 예후가 일어나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말하였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7 너는 네가 섬기는 상전 아합의 가문을 쳐라. 나는 내 종들인 예언자들의 피와 또 주님의 다른 종들의 모든 피를 이세벨에게 갚으려고 한다.8 나는 아합의 가문을 모두 다 멸망시킬 것이다. 그렇다. 아합에게 속한 사람은 매인 사람이건 놓인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남자는 누구나 이스라엘 안에서 끊어 버릴 것이다.9 나는 아합의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이 만들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과 같이 만들 것이다.10 그리고 개들이 이스르엘 땅 안에서 이세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그를 매장할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11 예후가 왕의 신하들이 있는 데로 나오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이었소? 그 미친 녀석이 장군께는 무슨 일로 왔었소?” 예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들께서도 그 사람이 누구고, 그가 쓸데없이 떠들고 간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믿소.”12 그러나 그들이 말하였다. “슬쩍 넘어가지 마시오. 우리에게 사실을 말해 주시오.” 예후가 대답하였다. “그의 말이, 주님께서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다고 말씀하시었다고 하였소.”13 그러자 그들은 황급히 일어나, 각자 자기의 옷을 벗어서, 섬돌 위 예후의 발 아래에 깔고, 나팔을 불며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 하고 외쳤다.

 

주석

1절. “너는 허리를 단단히 묶고”는 어떤 행동을 위해 준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3절. 예후에 대한 예언은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지시하신 명령이었고 아합 가문의 멸망은 엘리야가 했던 예언이었다(왕상 19:15-16; 21:20-28). 이 모든 것은 엘리사의 제자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엘리사의 시종

엘리사 선생님이 갑자기 부르셨다. 

뭔가 중대한 말씀을 하려는 듯, 입술은 굳게 닫혔고, 양쪽으로 살짝 늘어졌다. 

시종을 바라보는 눈빛은 맑고 깊었다. 

잘 들으라며, 미리 언질을 주셨다. 

이미 그의 손에는 기름병이 들려 있었고, 시종은 혹시 자신에게 부으려고 하는지 순간 의심했다. 

“이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길르앗 라못은 전쟁이 그치지 않는 곳이었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로 한동안 시리아의 점령 속에 있었지만 최근 요람(북이스라엘)과 아하시야(남유다)이 합공하여 시리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만나라, 그를 밀실로 데리고 가서, 이 기름을 그의 머리에 부어라. 그리고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라고 말하여라”

시종은 다리가 풀렸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람 왕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왕의 휴양지였던 이스르엘에 머물고 있다. 

이스르엘 지역은 예전에 아합왕과 이세벨이 나봇으로부터 그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았던 곳이다. 

부상당한 왕을 두고 전장의 장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니, 이건 반역이었다. 

시종은 정신이 아득했다.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전장의 장군을 불러 내기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엘리사 선생님이 직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왔고, 실제로 두려웠다. 

마지막 말이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너는 문을 열고 속히 도망하여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왠지 생명 걸고 하라는 말을 들렸다. 

 

길르앗 라못으로 가는 내내 걱정이었다. 

기름병을 들고 가는 것 자체가 부담 100배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미션이었다. 

그동안 선생님의 심부름을 실수없이 수행해 왔다. 

순종이라면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결이 다른 심부름이었다.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시종에게 시켰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길르앗 라못에 도착하니 과연 전장터였다. 

곳곳에 전쟁의 흔적이 선명하다. 

나무들이 꺾여 있었고, 불에 그을린 자국도 분명했다. 

돌에 묻은 핏자국도 아직 그대로였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장군들이 모여 있는 지휘소가 어딘지 알려주었다.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몇번이나 증명해야 했다. 

 

장군들의 회의 장소에 들어가기가 몇번이나 주저되었다. 

하지만, 엘리사가 섬기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시종의 하나님이기도 했다. 

엘리사의 명령은 사람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용기를 내었다. 

과거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 올라가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특히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담대함을 떠올렸다. 

엘리사 선생님의 굳은 입술과 단호한 말들을 기억해냈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 누가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인지 파악했다. 

그를 보며 말을 했지만, 그 자리에는 장군이 한 둘이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군사 회의 중에 낯선 사람의 침범을 용인하기 쉽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예후는 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장군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가 주시죠” 

낯선 젊은이의 요청은 무례했다. 

전투중인 장군을 혼자 불러낸다? 

신원 파악이 확실하지 않은 민간인 복장의 한 젊은이와 같이 둘만 있는다?? 

 

무기를 소지했는지는 이미 검색이 끝난 상황이었다. 

장군이 민간인 청년의 말에 겁을 낼 일은 아니었다. 

시종을 불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둘만 있는 공간에 접어들자, 시종은 엘리사의 표정을 따라했다. 

그리고 기름병의 기름을 장군에게 부었다. 

예후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그 행동의 기이함과 갑작스러움에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시종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합니다. 아합의 왕가를 진멸하십시오. 이세벨은 개에게 물어 뜯길 겁니다.’

엘리사의 예언을 그대로 읊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하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예후 또한 그 말들을 들으면서 전율이 올랐다. 

하나님의 선택이 자신에게 온 것이다. 

 

시종은 부리나캐 달려 나갔다.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고 싶었다. 제발… 

시종은 그의 소임을 다했다. 

혹시 여기서 잡혀서 죽을 수도 있었다. 

요람의 신복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반역의 앞잡이인 이 시종을 가만 둘 리 만무하다. 

 

2. 왕이 된 예후 

다른 장군들은 갑자기 뛰쳐나와 빨리 사라져가는 시종을 보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예후가 빨리 나오지 않았다면, 혹시라고 암살 시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예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봤다. 

“좋은 소식이었소? 그 미친 녀석이 장군께는 무슨 일로 왔었소?” 

예후는 일단 시종의 말을 숨기고 싶었다. 

“장군들께서도 그 사람이 누구고, 그가 쓸데없이 떠들고 간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믿소.”

다른 장군들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쟁의 중요한 정보였을 수도 있었다. 

전황을 뒤집을 핵심적인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예후가 심어 놓은 정보원이었을 수도 있다. 

“슬쩍 넘어가지 마시오. 우리에게 사실을 말해 주시오.” 

예후도 더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주님께서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다고 말씀하시었다고 하였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장군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젊은이가 엘리사의 시종이라고 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의 강압 통치에 안그래도 진절머리가 난 상황이었다. 

예후 같은 장군이 왕이 된다면 그동안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 했던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후는 왕이 될만한 리더십과 성품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다들 공감하는 눈치였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갑옷을 벗고, 웃옷을 벗어 예후의 발 아래에 깔았다. 

병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나팔을 가져다가 불면서 이렇게 외쳤다.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다. 

하나님이 새로운 왕을 주셨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통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으셨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 왕을 대체하도로 하셨다.

그 전통이 다시 살아났다. 

예후가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에 다시 개입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람을 부르셔서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 

그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기억합니다. 

부담되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부르신 것이 확실하다면, 용기를 내겠습니다. 

엘리사의 시종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마다않고 최선을 다해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용기와 힘과 지혜를 공급해주세요. 

 

하나님의 개입을 간절히 구합니다. 

한국의 역사에 개입해주세요. 

세계의 전쟁 가운데 개입해주세요. 

평화의 시대가 오도록 이끌어 주소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항국적인 평화의 땅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인도해주세요. 

자신의 이익과 분노에 의해 움직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더 많아지도록 도와 주세요. 

 

설 연휴의 시작입니다. 

너무 풀어지지 않고, 제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서, 가정과 가족을 섬기도록 이끌어 주세요. 

잘 쉬고, 잘 먹고, 잘 섬기는 하루 하루 되게 해 주세요. 

달리면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달릴 때 주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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