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7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1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왕 제 이십삼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열일곱 해 동안 다스렸다.2 그러나 그는 주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을 하였고,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 그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다.3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시리아의 하사엘 왕의 손에 그들을 넘기시고, 계속해서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다.4 그러나 여호아하스가 주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하니, 주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왕의 억압으로 고난을 받고 있음을 보셨기 때문이다.5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구원자를 보내어, 시리아의 손에서부터 벗어나게 하셨고, 이스라엘 자손은 예전처럼 그들의 장막에서 편안하게 살았다.

6 그럼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여로보암 가문의 죄로부터 돌아서지 않고, 여전히 그 길을 그대로 걸으며, 사마리아에는 아세라 목상까지도 그냥 세워 두었다.7 시리아 왕이 여호아하스의 군대를 공격하여 타작 마당의 먼지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여호아하스에게는 겨우 기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만이 남았다.8 여호아하스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그가 누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9 여호아하스가 죽으니, 사마리아에 안장하였고, 그의 아들 여호아스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메시지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고치지 않았고, 이제는 이스라엘의 특징이 되어 버린 여로보암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사마리아에 여전히 성행하고 있던 아세라의 음란한 종교 산당이 그중 하나였다(6절).

 

주석

아세라 목상(6절). 아세라는 엘의 배우자로서 대중에게 인기 있는 여신이었다. 성경 기사에 아세라가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것은 아세라 숭배가 야웨 예배의 주요 경쟁 상대였음을 나타낸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왕조가 바뀌고, 새로운 왕이 등장했지만, 그도 여전히 죄를 짓고 만다. 

예후는 종교 개혁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말년에 실수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 

예후의 끝이 좋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건 참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끝이 아쉬웠던 탓일까.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예후의 개혁 정신을 본받지 않고, 과거의 여로보암의 길로 빠지고 만다. 

하나님 대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던 것이다. 

참 인간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역사가 말하고 있건만, 어찌 그렇게 쉽게 죄의 길로 간단 말인가? 

좀더 강력한 구조적 울타리가 있어야 했을까! 

죄의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더 다양한 방식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신상과 신당들을 모조리 없애는 것도 해당된다. 

혹은 정기적으로 왕이 신앙 집회를 열거나, 율법에서 명한 바 여러 절기와 규칙들을 잘 지켰어야 했다. 

여호아하스의 죄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또 다시 곤경에 처한다.

시리아의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또 이 순간에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을 찾는다. 

위험의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는다. 

위험이 지나가면 또 다시 죄를 짓는다. 

인간이 이렇다. 

인간 심리 속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나보다. 

기존의 것은 지루하고 식상해한다. 

결국 하나님도 지루하고 식상해하는 것이 인간이다. 

처음 마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약속에 신실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 열망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인류 역사는 새로운 것의 도전의 역사다. 

지키는 것은 지루해보일 뿐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자신이 돋보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시리아의 위협이 끝나자, 곧바로 죄의 길로 들어갔다. 

특히 아세라 목상을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여전히 그냥 세워두었다. 

또 다시 시리아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리고 여호아하스에게는 아주 소수의 군대만 남게 되었다. 

17년의 통치 후에 남은 군대는 한 나라를 관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역사의 주인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해야 하는 소명을 받은 왕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역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을 이끌고 나가야 하시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 

때로는 꾸짖기도 하시고, 때로는 혼을 내시기도 한다. 

그분의 백성이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분을 떠나서는 소명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소명을 받은 사람은 최선을 다해 그분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 

 

나의 자의식도 소명자이다.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최선을 다해 그분의 뜻을 추구한다. 

비록 완전하지도 균형잡히지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그 소명을 향해 나아간다. 

오늘도 그분의 뜻에 집중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소명을 받은 사람의 삶은 어찌보면 단순합니다.

소명을 주신 분의 눈과 손만 집중하면 됩니다. 

주님이 제게 주신 소명을 끝까지 붙들게 하소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힘들 때나 쉬울 때나 변함 없이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왕들의 변덕이 참 아쉽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당신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 약속을 저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삶의 끝자락에,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신뢰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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