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9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자,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시여!”15 엘리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활과 화살을 가져 오십시오.” 그가 활과 화살을 가져 오자,16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활을 잡으십시오.” 그가 활을 잡으니, 엘리사가 그의 손 위에 자기의 손을 얹었다.17 엘리사가 말하였다. “동쪽 창문을 여십시오.” 왕이 창문을 열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쏘십시오.” 그가 활을 쏘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주님의 승리의 화살입니다. 시리아를 이길 승리의 화살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아벡에서 시리아를 쳐서, 완전히 진멸하실 것입니다.”18 엘리사가 또 말하였다. “화살을 집으십시오.” 왕이 화살을 집자,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땅을 치십시오.” 왕이 세 번을 치고는 그만두었다.19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대여섯 번 치셨으면 시리아 군을 진멸할 때까지 쳐부술 수 있었을 터인데, 고작 세 번입니까? 이제 임금님께서는 겨우 세 번만 시리아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20 그런 다음에 엘리사가 죽으니, 거기에 장사하였다.

그 뒤에 모압의 도적 떼가 해마다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였다.21 한 번은 장사지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주검을 묻고 있다가, 이 도적 떼를 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그 주검을 엘리사의 무덤에 내던지고 달아났는데, 그 때에 그 사람의 뼈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그 사람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섰다.

 

메세지 

엘리사가 말했다. “이제 동쪽 창문을 여십시오!” 왕이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엘리사가 말했다. “쏘십시오!” 왕이 활을 쏘았다. 엘리사가 큰소리로 말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화살입니다! 아람에게서 구하시는 화살입니다! 아람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왕께서 싸울 것입니다.”(17절) 

 

주석

14절. 14절에서 왕이 한 말은 엘리야가 떠날 때에 엘리사가 한 바로 그 외침(왕하 2:12)을 반복하는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엘리사의 죽음이 기록되었다. 

엘리사는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여호아스가 엘리사의 죽음 앞에 울고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는 것이었다. 

시리아 군대의 도전 앞에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찾았을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앞선 본문에서 이미 이뤄졌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으며,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갔다. 

엘리사의 죽음에 애도하기 전에, 그 엘리사가 어떤 삶을 살라고 말했는지를 깊이 숙고했어야 했다. 

 

엘리사는 선지자 학교를 만들고, 많은 선지자 혹은 예언자들을 길러냈다. 

오늘날 신학교를 만들고 많은 목회자를 배출한 것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대를 흐름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이킬 수 없었다. 

이것이 엘리사의 슬픔이었다.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새로운 세대를 일으키고, 종교개혁자를 배출했음에도 왕들의 악행을 막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여러 차례 구원해 주셨지만, 그 때 뿐이었다. 

왕도 백성도 하나님을 참 쉽게 잊어 버렸다. 

엘리사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여러 회한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의 죄악을 막을 수 없었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모습에 좌절했을 것이다. 

 

현대인들 속에서 사역하는 많은 사역자들의 마음이 이러할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만,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을 떠나간다. 

특히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멀리한다. 

숱한 노력과 전략적 수고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교회에 실망했으며, 생존을 위해 무한 경쟁 속에 살고 있고, 그 스트레스를 다른 즐거움에서 찾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출석하던 소수의 중고등학생들도 교회에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청년들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교회에 청년은 없고,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기성세대만이 교회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청년 사역자들이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지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청년들이 변화되지 않고 모이지 않는다. 

 

엘리사 시대, 하나님이 노력하지 않으셨는가? 

아니다. 하나님도 열심히 당신의 일을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돌릴 수는 없으신 모양이다. 

그분이 할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사랑을 주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기로 하셨다. 

그분의 성품이 그런 강제성을 수용하지 않는다. 

사랑의 원천이신 그분은 강제적 사랑을 원치 않으신다. 

충분한 사랑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었음에도 심지어 죽음의 문턱에서 구출했음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어찌 할 수 없는 분이시다. 

다윗 같은 사람이 정말 별로 없다. 

모세 같은 사람이 정말 별로 없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실망시켰다. 

 

여호아스는 시리아로부터 고통을 받았다. 

계속 침략하는 그들을 대적할 힘이 그에게 별로 없었다. 

한동안 하나님을 떠났었지만, 전쟁을 앞두고, 또한 엘리사의 죽음을 앞두고, 엘리사에게 달려갔다. 

그의 도움 없이 전쟁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시여!”

엘리사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애절하다. 

아쉬움도 남는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아버지요, 이스라엘의 진정한 병거와 마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왜 그 사실을 여호아스는 알지 못했는가! 

영광을 사람에게 돌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했다. 

엘리사도 이정도의 칭찬이라면 정색을 해야 했다. 

죽음을 앞두고 눈치 볼 것도 없으니, 담대하게 말해도 되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병거와 마병이라고 강하게 외쳐도 될 일이었다. 

 

화살을 날리고, 땅을 치라는 요청도 어찌보면 참 어이 없다. 

여호아스의 믿음을 확인할 다른 방법도 있었다. 

이참에 그동안 저질렀던 죄악에 대해 회개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 

사무엘 시절의 미스바 대각성 집회 같은 것을 요청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 하나님께 회개하는 조건으로 승리를 약속했으면 좀더 낫지 않았을까!

역사의 가정은 없다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제 곧 3월이다. 

새로운 변화가 가장 많은 시절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시기기도 하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대학생, 청년이 많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여호아스건 엘리사건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아무리 큰 능력을 행하더라도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큰 성취를 이루었다고 교만치 않게 하소서. 

성취가 없다고 좌절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일하심을 겸허히 기다리기 원합니다. 

그 일을 보는 것은 특혜요 은혜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보지 못하더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제 눈에 안보이는 것이지, 전 세계 곳곳에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내일 있을 마라톤 대회도 주님을 생각하며 달리게 하소서. 

달리는 내내 주님께서 일하시길 기도하며 달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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