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사도행전

행 5:12-16_놀라운 일들의 연속

Creve Coeur 2025. 7. 11. 14:08

2025년 07월 11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새 힘을 주십시오.

 

12 사도들의 손을 거쳐서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 모이곤 하였다.13 다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감히 그들의 모임에 끼여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백성은 그들을 칭찬하였다.14 믿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주님께로 나아오니, 남녀 신도들이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15 심지어는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메고 나가서, 침상이나 깔자리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 그림자라도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 덮이기를 바랐다.16 또 예루살렘 근방의 여러 동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

 

NIV

No one else dared join them, even though they were highly regarded by the people. Nevertheless, more and more men and women believed in the Lord and were added to their numbers(13-14절).

 

주석

14-16절. 치유는 예수님의 사역과 동일하게, 치료를 원하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치유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새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다(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사도행전 1부, 127쪽)

 

1. 다른 사람들?

13절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영적인 열정이 가득한 곳, 성령님의 역사가 사도들을 통해 벌어지는 곳, 솔로몬 행각!! 

그곳은 예루살렘 성전 한 편에 지어진 건축물로서, 기둥과 지붕으로 구성된다. 

그늘에 모인 사람들은 사도들의 말씀과 그들의 행적을 보며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누가는 “다른 사람들은” 그 모임에 감히 끼여들지 못하였다고 한다. 

다시 한번 다른 사람들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하면 비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교회 안팎으로 사도들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특히 베드로의 권위는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데, 15절에 보니, 병자들은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 그림자에라도 닿기를 바랬다. 

그리고 실제 사도들에 의해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들이 고침 받았다. 

매우 특별한 순간이다. 

예수님의 기적보다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교회의 권위, 하나님 나라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셨는데, 그 결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권위가 하늘까지 높아졌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본문의 다른 사람들은 사도들을 제외한 그리스도인 및 비그리스도인 전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래 참고를 참조).

 

사도성에 대한 특별한 강조가 여기서 드러난다. 

이 사도성이 약화되면, 예수님에 대한 다른 증언들도 쉽게 통용될 수 있었다. 

사도들의 일치된 판단이 없다면, 교회의 전통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최근 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에서 헌법재판소의 재판 과정을 소상하게 보게 되었다. 

8명의 헌법재판관들이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래서 그들의 합의와 결정의 과정에 누군가 참여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들의 권위가 떨어지고, 판결문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다. 

이와 매우 유사하다. 

12명의 사도들의 판단을 최종 판단으로 인정해야 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다른 제자들, 예수님으로부터 병고침을 받았던 다른 제자들이 개입했을 때, 교회의 최종 판단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 새로운 시대를 위해 사도들의 권위를 최고 단계까지 끌어 올리신 것이다. 

이렇게 권위를 부여했음에도, 사도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단들이 극성을 부렸고, 교회가 분열되는 아픔도 있었다. 

 

그런면에서 아나니와 삽비라 사건을 재조명해야 한다. 

어제는 그 사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까지 이어보면, 하나님의 뜻이 좀더 분명해진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특별히 새운 사도들의 권위를 높이 세우셔야 했다. 

그 권위를 기반으로 성경이 정경이 될 수 있었고, 새로운 시대를 열수 있었다. 

사도적 권위!! 

 

2. 권위 

사도적 권위는 초대교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예수님이 책을 쓰셨으면, 특히 교회법과 운영 규칙을 쓰셨다면, 교회를 세우는 데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분은 책을 쓰시지 않으셨다. 

글도 남기지 않으셨다. 

길 바닥에 쓰신 글, 간음하다 잡힌 여인 앞에서 쓰신 글 외에는 특별히 글을 쓰신 게 없다. 

그 흔한 편지도 없다. 

사도 바울은 편지도 많이 썼는데 말이다. 

그러니 성령님의 능력을 받은 사도들의 증언과 그들의 결정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이 성경을 통해서다. 

즉 사도들이 인정한 글들을 통해서다. 

사도들의 권위가 초대교회에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오해하지 말자. 

지금도 그런 사도적 권위를 교회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심각한 오해다. 

성경이 정경으로 완성되고, 교회의 전통이 확립 된 이후에는 그런 사도적 권위를 행사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개별 교회는 사실 매우 이단적이다. 

게다가 이 시대는 권위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도리어 초대교회 사도들의 결정으로 이뤄진 성경을 기반으로, 성경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운영하도록 민주적 거버넌스를 갖추는 것이 더욱 좋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이, 한 두 사람의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종속되고,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건강한 권위, 그것은 상호 섬김에서 나온다. 

이타적 상호 섬김이 있는 공동체적 결정이 권위를 갖는다. 

한 개인의 탁월함에 기대는 권위는 지속적이지 못하고 위험하고 타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타적 상호 섬김의 사람들 3명 이상이 모여서 결정할 때, 큰 권위를 갖는다. 

우리 공동체가, 한국 교회가 그런 권위로 무장했으면 좋겠다. 

예수 이름을 입에 담으면서 개인의 욕망을 관철하려는 리더의 권위는 예수 이름의 영광을 가린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고 싶습니다. 

주님을 응시하며 살렵니다. 

주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주를 따라 살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봅니다. 

그들도 모두 주님을 따라 가려고 노력했던 분들입니다. 

그들에게서 배웁니다. 

그들이 주님의 권위를 어떻게 인정하고, 어떻게 자신들의 공동체에 적용하려고 했는지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의 뜻과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역사를 이끕니다. 

주님, 당신을 응시하게 하시고, 주님이 보시는 사람을 응시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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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러한 해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최근 영어권 학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I. Howard Marshall (아이 하워드 마셜): 마셜은 그의 저명한 사도행전 주석(The Acts of the Apostles, NICNT)에서 이 구절을 논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외부인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 즉 사도들 외의 일반 신자들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인해 사도들의 권위가 확고해졌고, 이에 따라 다른 신자들이 감히 사도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거나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초기 교회 내에서 사도들의 특별한 역할과 권위가 인정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Ben Witherington III (벤 위더링턴 3세): 위더링턴은 그의 사회-수사학적(socio-rhetorical) 사도행전 주석에서 이 구절을 다루며, "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일반 구성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공동체 내에 경외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일반 신자들이 사도들의 특별한 영적 권위와 지위를 존중하며 감히 그들과 동등하게 행동하거나 그들의 역할을 침범하려 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합니다. 이는 초기 교회의 질서와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인정을 보여주는 구절로 봅니다.

F. F. Bruce (F. F. 브루스): 브루스 역시 그의 사도행전 주석에서 "다른 사람들"이 교회 내의 일반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이후 공동체 전체에 퍼진 "거룩한 두려움(holy fear)"이 일반 신자들이 사도들의 특별한 위치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게 했고, 감히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그들과 동등하게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게 했다고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