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4:32-37_가난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
2025년 07월 09일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36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37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NIV
There were no needy persons among them(34절a).
주석
36-37절. 이러한 헌금은 종종 있었다. 바나바에 대한 언급은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올 부정적인 예와 대조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이러한 기술 방식은 고대의 흔한 문학 기법이다(IVP 성경배경주석, 1591쪽).
1. 받은 은혜
성경 저자는 초대교회 시대 사람들이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33절)
주어가 “많은 신도”이니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교회에 적을 둔 신도일 것이다.
그들은 큰 은혜를 받았다.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
1) 첫째,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인종적 다양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절기를 맞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였다면 비록 그들이 유대인들이라고 하지만, 각 지역의 혈통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유대인이었을 것이고, 다른 인종도 있었겠지만 유대교를 신봉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 자란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 나라에서도 서로 생각이 다른 정치적, 학문적 분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이라는 한 분 아래에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작은 공동체에서도 한 마음과 한 뜻이 되기 어렵지 않은가!!
2) 둘째, 공동 소유다.
마음이 모이니, 소유의 개념이 바뀐다.
“내 것이 네 것이다”가 된다.
필요한 사람이 사용해라가 된다.
먹을 것이 전달되고, 입을 것이 공유된다.
집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이 이웃의 집에 들어가 쉼을 누린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나눠주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아주 특별한 일이 그곳에서 벌어졌다.
현대에도 이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공동체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꿈과 비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길 바란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법,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재물을 나누고 구제를 실천하고 시간을 드리는 방법을 쓴다.
세금을 내고, 기부를 실천한다.
그리고 희년제도의 정신을 살려 빚을 탕감해주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준다.
누진세도도 필요한 제도다.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최고의 모델이 바로 오늘 본문이다.
3) 셋째, 큰 능력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선포다.
그들이 한 마음이 된 원동력이자 계기다.
부활을 증언하는 것도 감사한데, 큰 능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사도들에게 성령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난 것이다.
치유의 역사와 함께 예수의 부활이 증언된다.
방언과 통변과 예언과 이적과 함께 예수의 부활이 증언된다.
곳곳에서 감사가 터져나오고, 감탄이 생겨난다.
이러니 은혜를 받지 않을 신도가 없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나고 흥분된다.
은혜를 단순히 정서적 카타르시스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은혜는 실제적인 삶의 변화와 행동이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 소유를 서로 나누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것.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은혜가 작동한다.
한 번의 기도회에서 찬양하고 부르짖는 것으로 은혜를 논하는 것은 얄팍하다.
2. 바나바 요셉
바나바의 원래 이름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바나바라는 이름이 훨씬 더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이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다.
“위로의 아들”로 그의 이름이 훨씬 더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나바가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이 그의 경청이나 상담 능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근본적으로 돈에 있다는 것을 본다.
그가 위로의 아들이 된 것은 그가 가진 돈으로 사람들을 많이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왔기 때문이다.
시간적 선후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위로의 아들이라고 별명을 갖게 된 것이 먼저인지, 자기의 밭을 팔아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둔 것이 우선인지.
키프로스 태생인데, 예루살렘 성 주변에 밭이 있었을까 싶다.
도리어 키프로스에 있는 자신의 밭을 팔아, 그 돈으로 공동 소유를 실천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만약 그렇다면 꽤나 복잡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성품과 돈으로 사람들을 섬겼다.
앞으로 바울 선교팀에서 마가를 데려가는 문제로 바울과 갈등이 있을 때, 그는 마가의 편을 들었다.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쪽으로 마음을 쓰는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가난한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길 바란다.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합법적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세금내는 서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만약 그런 일에 성공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나중에라도 이 모든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배웠다고 고백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오늘의 기도]
날이 덥다 못해 흘러내립니다.
더위 속에서 고통받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보호해주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은혜는 하나된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옵니다.
은혜는 물질을 공유하고 서로 도울 때 드러납니다.
은혜는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확고해집니다.
주님의 은혜가 저와 주변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도우소서.
오늘 만나야 할 사람,
오늘 생각해야 할 것들,
오늘 처리해야 할 일들,
이 모든 일상을 건강하게 감당하도록 몸과 마음을 돌보소서.
위로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힘을 공급하는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위로의 근원은 예수님이시니, 예수님께로 이어붙이는 통로가 되면 그만입니다.
또한 물질을 흘려 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