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6:19-7:1_거룩히 구별하여 궤를 지키게 하다
2025년 01월 28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19 그 때에 벳세메스 사람들이 주님의 궤 속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서 오만 칠십 명이나 쳐서 죽이셨다. 주님께서 그 백성을 그렇게 크게 치셨기 때문에, 그들은 슬피 울었다.
20 벳세메스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렇게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누가 감히 모실 수 있겠는가? 이 궤를 어디로 보내어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할까?"
21 그들은 기럇여아림 주민들에게 전령들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이 주님의 궤를 돌려보냈으니, 내려와서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주님의 궤를 옮겨,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세워서, 주님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
NIV
But God struck down some of the men of Beth Shemesh, putting seventy of them to death because they had looked into the ark of the LORD. The people mourned because of the heavy blow the LORD had dealt them(19절).
주석
19절. 벧세메스에서 죽은 사람들의 숫자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본에 따라 칠십이나 오만 칠십 명이라고 번역한다. 칠십이라는 숫자도 전통적으로 큰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오만 칠십 명?
처음에는 이 숫자에 깜짝 놀랐다.
언약궤 안을 보았다고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시다니?
주석을 보니, 칠십 명일 수도 있다는 설명에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사실이기에 혼란스럽다.
70명이라고 해도, 그들이 모두 언약궤 안을 쳐다 본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가 쳐다 보았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에 분노하셔서 그 주변의 사람들도 죽이신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시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구약의 난제다.
그럼에도 이 본문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해 준다.
하나님은 인간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의 영광과 존귀는 인간의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인간 왕과 하나님은 다르다.
인간 왕은 자신을 가능한 많이 드러내야 그 영광과 능력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체가 영광과 능력과 존귀로 가득하다.
오랜 세월 언약궤에 대한 이야기를 전설이 아니라 사실을 받아들여 살아왔다면 그들은 언약궤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율법대로 절기 마다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와 예식을 온 맘으로 드렸다면 언약궤의 실재성을 제대로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일에 실패했다.
전쟁터에 함부로 가져 간 것도 그렇고, 그 전에 하나님의 전에서 엘리의 두 아들이 보였던 죄악상도 그렇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그러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무시했다.
경건함을 잃어 버렸다.
하나님을 업신 여기니 결국 죽음이 임한다.
벧세메스 사람들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다루는 사람들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누가 감히 모실 수 있는가?
하나님을 다른 신들처럼 대해서는 그들이 살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모시는 분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그 영광으로 존재하시고, 사람들은 그 앞에 엎드려져야 한다.
하나님을 모시려고 하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분께 온 마음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려라.
그분의 영광이 어디 사람이 만든 것에 갇히겠는가?
사람이 만든 건축물과 인공물에 제한되겠는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시공간을 초월하는 현상에 대해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양자역학이 하나요, 블랙홀이 또 하나다.
작은 소립자 세계에서는 양자 얽힘 현상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연동 현상이 발견되었다.
거대 세계에서는 블랙홀로 인해 시공간이 휘어지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냈다.
그런 자연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시공간을 초월해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동안 형이상학적 사고의 대상이었던 하나님의 초월성이 이제는 과학적 사실로 부각된다.
감히 그분을 어떻게 한 장소에 모실 수 있단 말인가?
[오늘의 기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
주님의 영광과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인간의 생각으로 가둘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언약궤 안에 갇혀 게신 분이 아님을 알게 하소서.
교회 예배당 안에 갇혀 게신 분이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은 우리의 생각을 벗어나서 자유로이 활동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당신이 성경 안에서 스스로를 제약하고 계심을 생각할 때,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을 통해 스스로를 제약하고 게심을 생각할 때,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오늘도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