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사무엘상

삼상 5:1-5_궤 앞에 엎어진 다곤

Creve Coeur 2025. 1. 22. 11:49

2025년 01월 22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1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서,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가져 갔다. 

2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전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다곤 신상 곁에 세워 놓았다. 

3 그 다음날 아스돗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보니, 다곤이 주님의 궤 앞에 엎어져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들은 다곤을 들어서 세운 다음에,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4 그 다음날도 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 보니, 다곤이 또 주님의 궤 앞에 엎어져서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다곤의 머리와 두 팔목이 부러져서 문지방 위에 나뒹굴었고, 다곤은 몸통만 남아 있었다. 

5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다곤의 제사장들과 다곤 신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들어갈 때에, 문지방 위를 밟지 않고 넘어서 들어간다.

 

주석

2절. 고대 근동에서 정복자들이 빼앗은 우상들을 자신의 신전에 놓아두는 것은 흔한 관습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은 승리자의 신들이 적들의 신들을 패배시켜 사로잡았다고 믿은 것이다(IVP 성경주석).

4절. 정복한 적군의 머리는 일반적으로 그가 죽었다는 증거로 진열되었으며, 손을 끊는 것은 적군의 무력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사상자 수를 세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주님의 궤 앞에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의 승리로 주님의 언약궤를 빼앗을 수 있었다. 

그들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칭송하고 있었다. 

다곤 신!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다곤 신 앞에 별 거 아니란다. 

 

원래 언약궤는 운반할 때도 엄격한 규정에 따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어떻게 운반하는지는 신경쓰지 않으신다. 

엘리 제사장 가문과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여주시는 것이 일차 목표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그 어떤 신과도 견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것이 이차 목표다. 

이가봇이라고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지어준 비느하스 아내의 모습은 일차 목표가 매우 효과적으로 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고자 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어떤 능력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출하셨는지,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전설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전설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전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의 진실에 가깝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이스라엘을 무찔렀을 뿐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았은 것이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당연히 다곤 신상 곁에 언약궤를 세워 놓았다. 

세워 놓았다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마치 이방신의 신상 대하듯 대했다는 뜻일 게다. 

3절에 보면 넘어진 다곤을 들어서 “세운” 장면이 묘사된다. 

아무리 전쟁에서 진 신이라해도 여전히 신적 기념물이니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며, 다곤 신 곁에 두면 상관 없을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다곤 신의 제사장들의 조언도 한 몫했다. 

 

그러나 곁에 있던 언약궤 앞으로 다곤 신이 엎어졌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림을 그려보면, 다곤 신상은 정면으로 넘어진 것이 아니다. 

언약궤 쪽으로 틀어져서 넘어졌는데, 좀더 과장해서 상상하면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듯 언약궤 앞에 엎드려져 있었다. 

밤에 아마 큰 소리가 났을 것이다. 

다곤 신의 제사장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다곤 신을 지키는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잠을 자고 경비를 보며 당직을 봤을 것이다. 

그렇게 큰 소리가 났다면 그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침이 되도록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다곤 신상은 소리없이 넘어져 언약궤 앞에 엎드러져 있던 것이다. 

 

이쯤되면 언약궤에 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몰라봐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이 있었다. 

분명 전쟁에서 이기지 않았나!! 

다곤 신상을 다시 세웠다. 

우연히 그냥 넘어진 것이라 애써 위안했다. 

의심했지만 그 의심과 싸웠다. 

 

그러나 그 다음 날에는 더 가관이었다 

신상의 머리, 팔, 다리가 다 잘려 나간 것이었다. 

조선시대 처형 방식 중 하나가 능지처참이다. 

몸통에서 머리, 팔, 다리를 분리해 죽이는 것이다. 

다곤은 여호와 앞에서 능지첨참을 당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제 확실히 믿어야 했다. 

신상은 그냥 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꼬꾸라뜨리신 것임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가치관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누적된 경험이 필요하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분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시는 인생의 순간들을 수 차례 경험해야 자신의 관점을 포기하곤 한다.

 

 

[오늘의 기도]

모든 권세자들보다 뛰어나신 주님, 

주님의 권능을 찬양합니다. 

주님보다 높아진 모든 것들을 뒤로 돌립니다. 

주님의 사랑에 더욱 기댑니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념이 폭력을 정당화한다고 믿습니다. 

교인들 중에 일부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주님 그들의 생각을 고쳐주소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을 배우게 하소서. 

비폭력적 자기 희생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끌고 들어오신 예수님을 닮게 하소서. 

기도하되 분별하고 행동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