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18-21_주님 앞에서 성장하는 사무엘
2025년 01월 08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18 한편, 어린 사무엘은, 모시 에봇을 입고 주님을 섬겼다.
19 사무엘의 어머니는 해마다 남편과 함께 매년제사를 드리러 성소로 올라가곤 하였다. 그 때마다 그는 아들에게 작은 겉옷을 만들어서 가져다 주었다.
20 그리고 엘리는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주님께 간구하여 얻은 아들을 다시 주님께 바쳤으니, 주님께서 두 분 사이에, 이 아이 대신에 다른 자녀를 많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복을 빌어 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축복을 받고서, 고향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21 주님께서 한나를 돌보아 주셔서, 한나는 임신하여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았다. 어린 사무엘도 주님 앞에서 잘 자랐다.
주석
18절. 모시 에봇은 제사장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무엘이 도제가 되었음을 나타낸다(IVP 성경배경주석).
19절. 겉옷은 제사장들이 입는 의상이지만 신분이 높고 권력있는 자들도 그것을 입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한나는 매년 사랑하는 아들 사무엘을 위해 겉옷을 만든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커가는 아들을 위해 매년 그 나이에 맞는 옷을 만들어야 했다.
한나는 아들을 보러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달력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그 날만을 기다린다.
제사를 드리러 가는 날에 옷만 가져다 주지 않는다.
가장 값진 소와 양 등 제물도 가지고 간다.
한나에게 일년 중 가장 소중한 날이다.
이런 날이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고통이자 기쁨이다.
아들을 일년 동안 보지 못하는 것, 그 커가는 아이의 성장과정을 보지 못하는 것, 그 재롱과 영특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고통일 게다.
그러나 그 사랑스런 아이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기쁨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는 그날,
그날은 아들을 만나는 날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날, 인생의 가장 기쁜 날이다.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어엿한 소년으로 엘리 제사장의 부사제로 제사를 돕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한량 없다.
한나는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다.
아들을 기뻐하는 만큼 하나님을 찬양했다.
아들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요, 그래서 하나님께 드려진 아들이다.
제사장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섬기는 자리에 있다는 것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요사이는 워낙에 아이들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자녀가 하나님보다 앞서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둘 밖에 없는 아이들이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다.
소중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그 부모가 갖추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오은영 박사와 상담 한 번 하려고 줄을 선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여전히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다.
많은 부모들이 혀를 내두르는 금쪽이와 그 부모가 등장한다.
과연 진짜 회복이 되는지 의문이다.
상상초월의 아이들이 가득하다.
육아로 고통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기독교 가정에서는 신앙 교육까지 감당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본을 보여야 하고 게다가 좋은 대학도 보내기 위해 온갖 참견도 마다하지 않는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슬픈 사교육 현실과 부모들의 극성은 현실이 더하면 더했지 적지 않다.
오냐오냐 키워야 하는지, 엄격하게 키워야 하는지,
아이들의 상황에 맞춰 그의 눈높이에 맞춰 키운다는 것의 실제는 무엇인지,
친구같은 부모가 맞는지, 선생같은 부모가 맞는지,
처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리저리 헤맨다.
유툽에 교육 인플루언서들이 활개치지만 정작 자신과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이다.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니 아이가 하나님보다 위에 있다.
한나처럼 모든 아이들을 하나님을 풀타임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기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아이를 맡기겠다는 결단으로 살 수는 있다.
아이보다 하나님이 우선이다.
아이에게도 부모보다 하나님이 우선이다.
하나님이 우선일 때, 진정으로 아이와 부모를 사랑할 수 있다.
집착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내 자신의 투영과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소명을 받은 자로서 아이를 볼 수 있다.
부모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해서 부모와 같은 인생 궤적을 가질 거라고 예단해서는 안된다.
자녀 개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대해 열려야 한다.
아… 말은 쉽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망나니처럼 컸지만, 사무엘은 주님의 뜻에 걸맞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로 자라간다.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하고 훈련했는지는 어떤 면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자로 커가는지, 아님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자로 커가는지가 중요하다.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이 다른 양육, 교육, 훈련을 받았을 것 같지 않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떤 아이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어떤 아이는 하나님을 소중히 여긴다.
성경은 그 원인을 숨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성경의 관심사가 아니다.
원인은 무수히 많다.
그 원인을 해석하고 소화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로 살아가느냐가 관건이다.
사무엘은 때로는 외로웠지만,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지만,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며 살았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 뿐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우주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로 세워지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환영하신 예수님,
아이들이 가지는 순수한 믿음을 귀하게 여기신 예수님,
어린 아이와 같이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
어린이 단순히 착하고 순진하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 의존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존하도록 이끄소서.
주변에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도 주님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존재로 자라가게 하소서.
주님을 무시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로 성장하게 하소서.
주변에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경외하는 아이들로 자라도록 이끄소서.
교회마다 청소년들이 크게 줄었습니다.
교회의 청소년부서가 생존하고 성장하도록 인도해 주세요.
반기독교적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성경과 세상을 연결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성경과 학교를 연결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현재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결국 주님의 세계 속에서 통합된다는 사실을 믿게 하소서.
지성과 합리성을 버리지는 않되, 신비와 영적 세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도록 도우소서.
과학이 보여주는 사실들과 성경이 보여주는 영적 진실들이 서로 연결되게 하소서.
주님,
아이들이 주님 앞에서 자라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