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4:16-23_머뭇거리는 사울
2025년 02월 2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6 베냐민 지역의 기브아에서 망을 보는 사울의 파수꾼들이 건너다 보니, 수많은 블레셋 군인들이 아우성을 치며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17 그러자 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는 군인들에게 명령하였다. “우리 가운데서 누가 빠져 나갔는지 조사하여 밝혀 내어라!” 사람들이 조사하여 보니,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드는 병사가 없었다.
18 그러자 사울은 아히야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오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었다.
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블레셋 진영에서 일어난 아우성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그래서 사울은 제사장에게 궤를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였다.
20 사울과 그를 따르는 온 백성이 함께 함성을 지르며 싸움터로 달려가 보니, 블레셋 군인들이 칼을 뽑아들고 저희끼리 서로 정신없이 쳐죽이고 있었다.
21 블레셋 사람들 편을 들어 싸움터에까지 나왔던 히브리 사람들도, 이제는 돌이켜서 사울과 요나단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편이 되었다.
22 또 전에 에브라임 산간지방으로 들어가 숨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블레셋 사람들이 지고 달아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뛰어나와 블레셋 군인들을 뒤쫓으며 싸웠다.
23 그 날 주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오늘의 묵상]
내 정신은 신학적 여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오늘 묵상을 하기 전 드는 생각이다.
지난 10여년간 나는 신학적 닻을 내리고 가능하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학생사역을 마무리하고 청장년 사역으로 전환하면서, 교회 사역을 마무리하고 다양한 교회를 방문하면서, 그리고 특히 12.3 계엄을 경험하면서, 신학적 여정을 좀더 적극적으로 떠나기로 했다.
닻을 올리고 돛을 내리는 신앙의 항해 말이다.
두려운 일이다.
하나님은 사울의 두려움과 오만함을 보시고 그를 버리셨다.
사무엘상 13:8-9
8사울은 사무엘의 말대로 이레 동안 사무엘을 기다렸으나, 그는 길갈로 오지 않았다. 그러자 백성은 사울에게서 떠나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9사울은 사람들을 시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한 다음에, 자신이 직접 번제를 올렸다.
그리고 오늘 블레셋과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사울은 여전히 못미덥다.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제사장 아히야(엘리의 아들 비느하스의 손자)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궤를 함부로 움직이면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안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울이다.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 때문에 언약궤를 빼앗겼던 사건을 모르면 안된다.
사울은 언약궤를 가져오라고 했다가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자꾸 바꾼다.
요나단의 용기과 믿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걸로 보인다.
전쟁은 기울었다.
블레셋 본진에서는 자기들끼리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제대로된 전투도 치르지 못한 채 블레셋은 자멸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 저자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칭송한다.
“23 그 날 주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출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실망시켰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현시킬 수 없는 왕이었다.
사실 이스라엘의 어떤 왕도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
그 유명한 다윗과 솔로몬도 그랬다.
인간에게 완전함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인간들은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조금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기준이 낮으면 불행의 정도도 낮아지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에 이르면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너무 완벽하신 그분!!
신학적 여정에서의 구출은 무엇일까?
멋진 항구에 정박하는 것인가?
드넓은 대양을 미끄러지듯 항해하는 것인가?
물고기를 배에 가득 싣는 것인가?
밤 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 빛 아래에서 팔배개를 베고 코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인가?
나의 신학적 항해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아직은 그 답을 모르겠다.
그 답을 찾기 전에는 기존에 정리된 것을 기본적인 나의 신념과 토대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 항해의 실험실은 통렬하게 가동되어야 한다.
내게 주신 운명일 수도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있다.
교만함은 버리자.
하나님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오늘의 기도]
저의 항해를 응원해 주소서.
배우고 익히고 살아내게 하소서.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있든지 주님을 신뢰하며 떠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