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1:1-7_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2025년 05월 29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2 믿음 안에서 나의 참 아들이 된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3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그대에게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4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5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6 그런데 몇몇 사람은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서 쓸데없는 토론에 빠졌습니다.7 그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NIV
As I urged you when I went into Macedonia, stay there in Ephesus so that you may command certain people not to teach false doctrines any longer or to devote themselves to myths and endless genealogies. Such things promote controversial speculations rather than advancing God’s work—which is by faith(3-4절).
주석
4절. ‘신화’는 신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전하는 이야기를, ‘끝없는 족보 이야기’는 당시의 몇몇 유대 문서에서 성경의 족보를 확대 해석하거나 조상의 기원을 잘못 추정하는 등의 오염된 진리를 의미합니다(IVP 성경배경주석-신약, 704쪽).
1. 다른 교리
복음서는 교리를 알려주기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집중한다.
바울 서신서는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올바른 교리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말해준다.
에베소라는 이교 사회에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때,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라고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다.
초대 교회는 세계관의 전쟁터 속에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온갖 신화가 사회에 만연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신화에 흔들린다.
그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신화 중 하나로 남는다.
우주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이야기가 여러 신화 중 하나로 취급받는 것을 바울은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디모데에게 그토록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와 바울이 말하는 교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걸 비교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현재는 수많은 교파들이 자신 나름의 교리를 가지고 정통성 논쟁을 펼친다.
어떤 것이 바울이 말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지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신학 실험실이 필요한 이유다.
2. 사랑
오늘 말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바로 5절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한 목적이 적시되어 있다.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란다.
가장 기본은 사랑을 꺼내서 확신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사랑도 종류가 있다는 점이다.
깨끗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 있는 반면,
더러운 마음, 악한 양심, 사기에 가까운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 같지 않은 사랑이 있다.
가짜 사랑은 남에게 좋은 것은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사랑이다.
자신을 희생한 예수님에게서 나온 사랑은 그야말로 깨끗하고 선하고 거짓이 없다.
순전히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다.
상대의 영혼과 육체와 미래를 위한 사랑이다.
순전한 사랑.
그 사랑을 위해 디모데는 끝까지 예수님과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교리를 붙들어야 한다.
과연 바울이 말한 것처럼 순전한 사랑은 바른 교리에서 나오는가?
이걸 따져보려면, 순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 순전한 사랑이 발생하는 경로는 무엇인지 파악해봐야 한다.
일단 가설을 세워보자면 순전한 사랑은 타인의 유익을 위한 목표가 제1의 목표가 되어 오롯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한 행위여야 할 것이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실제적인 유익과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유익이 될 것인지 미리 계산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랑이 나오는 경로는 무엇인가?
인간의 이기적 심성을 생각할 때, 자연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움직인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 이기심의 근원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이기심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 본성을 억누르고, 내가 아닌 타인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거나 희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순전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본성을 억누를 수 있는 힘, 동력을 찾아야 한다.
바울은 예수님에 관한 올바른 교리라고 보고 있다.
다른 것은 없나?
오늘의 궁금함이다.
하루 동안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싶다.
AI에게도 물어봐야 겠다.
[오늘의 기도]
온전한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
당신의 사랑이 온전하고 순전한 이유는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을 내어주심이 진정한 희생이 되려면, 예수님의 육체적 생명 또한 매우 귀중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영이기 때문에 육체는 사실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면, 당신의 육체의 죽음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것입니다.
허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희생이 그토록 강한 사랑의 표현이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도록 이끄소서.
그 사랑이 더 많이 흘러가도록 저를 붙드소서.
O현을 붙들어 주소서.
그의 고통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 부모의 아픔을 위로하소서.
수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